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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6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9-26 조회수 : 193

복음: 루카 9,7-9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대상! 

 

 

오늘 첫 번째 독서 코헬렛 말씀은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은 매일 백번 천번 곱씹고 되뇌어야 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으로는 더 이상 아무런 미련도 없다, 이미 다 버렸다, 다 내려놓았다고 외치지만, 끝까지 내려놓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물러서지 않는 오늘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은?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비관적이고 회의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허무한 대상이 있고, 절대 그렇지 않은 대상이 있습니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저녁 연기나 아침 이슬 같은 대상들, 허무한 대상들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대상이 있으니, 보다 영속적인 대상, 보다 고귀하고 품위 있는 대상,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대상이신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분을 사랑하고 추종하는 영적 생활입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우리가 무엇에 목숨을 걸고 있는지, 어떤 대상에 최상위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수시로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아닌 대상, 뜬 구름 같은 대상에 절대 목숨을 걸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단 한 걸음만 물러서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일이었는데, 그 순간을 못 참아서 몇 날 몇 일을 두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때로 건너지 말아야 할 강도 건너고 맙니다. 

 

사실 마음 크게 먹으면 모든 것 다 포용이 됩니다.

단 하루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머리 맞대고 으르렁대면서 싸울 일 하나도 없습니다. 

 

목숨처럼 중요시여기는 TV채널, 크게 마음먹고 양보하면 아주 마음이 편해집니다.

안 보면 큰일날 것 같은 주말 드라마, 안 봐도 아무 일 생기지 않더군요. 

 

심각해 보이는 형제의 결점, 눈 한번 찔끔 감아보니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용서 못 할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이의 허전한 뒷모습을 바라보니 모든 것이 다 용서될 뿐 아니라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을 포함해서 그 모든 것이 헛됩니다.

그토록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인연들, 그토록 우리가 자부심을 가졌던 학벌, 직책, 성과, 업적들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쌓아왔던 그 모든 것들, 특히 육적이고 인간적인 것들은 결국 한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더군요. 

 

이런 우리 인간의 실상에 대해서는 오늘 화답송에서도 잘 나와 있습니다.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당신이 그들을 쓸어 내시니, 그들은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 같사옵이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리나이다.”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코헬렛의 저자는 자신이 살았던 암울한 시대 상황을 자신의 글에 반영합니다.

그래서 그의 글의 톤은 무척이나 비관적입니다. 우울합니다. 

 

“세상 만사 허무로다! 인생은 덧없구나.

모든 것이 허무로다!” 

 

그는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맛보았을 것입니다. 부귀영화도 마음껏 누려봤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시절이 가고 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도 갔을 것입니다. 

 

잘 나가던 시절, 괴로웠던 시절, 행복했던 시절, 괴로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저자는 결론으로 모든 것이 덧없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모든 것이 지나가고 최종적으로 남게 되는 것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언젠가 우리가 재가 되고,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려도, 자취가 없이 사라져도 우리에게 영원히 남을 소중한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추종하고자 몸부림쳐왔던 우리의 신앙 여정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언젠가 우리가 세상을 떠나고, 결국 우리 앞에 남을 오직 한 가지는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영혼이며, 우리가 이 세상사는 동안 모아둔 영적 보화들입니다. 

 

꽃을 시들고 잎은 떨어집니다.

세상 모든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가치들과 사고방식들도 아침이슬처럼 사라집니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우리 앞에 오직 한 가지 필요한 것이 남는데, 그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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