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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8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9-18 조회수 : 169

복음: 루카 7,31-35 

 

낯선 이웃에게도 친절과 호의를 베풉시다! 

 

 

다들 고향을 찾아 떠난 여유로운 시간, 근처 방파제로 고도리 낚시를 갔습니다.

시장표 판매용이 아닌 사이즈가 좀 작은 고등어를 고도리라고 하는데, 나름 손맛이 쏠쏠합니다. 

 

만조 전후로 잘 잡히는데, 떼로 왔다 갔다 하다가 쑥 물고 들어가는데, 도착한 시간이 딱 타이밍이라 정신없이 잡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어린이들을 포함한 대가족이 낚시를 왔는데, 전혀 조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낚시꾼들은 다들 열심히 낚아 올리는데, 꽝 치고 있으니, 아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슬쩍 바라보니 바늘이며, 미끼며 전혀 아닌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입질 타이밍에도 불구하고 잠깐 낚시를 멈추었습니다.

찌도 달아주고, 바늘도 바꿔주고, 미끼도 잘게 잘라 끼워주었습니다. 

 

즉시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싱싱한 고도리가 번쩍이며 올라오자 아이들은 탄성을 내질렀고, 드디어 얼굴에 환한 미소가 깃들었습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이유는 아무래도 인간이 지닌 이타적 성향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낯선 이웃에게도 친절과 호의를 베풀 줄 아는 그런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인간은 자기라는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웃과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돈 한 푼 나오지 않는 일이지만 이웃이 당하고 있는 부당한 현실 앞에 기꺼이 발 벗고 나섭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긴박한 상황에 처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위기 상황에 뛰어듭니다.

이웃이 겪고 있는 깊은 슬픔에 연민의 정을 느끼는가 하면 이웃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동참합니다. 

 

오늘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 하나는 소통의 단절입니다.

인간 각자가 마치도 고립된 섬과도 같습니다.

같이 살아도 진정으로 같이 살지는 않습니다.

대화를 하고 있지만 진정한 대화가 아닙니다.

공감(共感)할 줄 안다는 것, 이 시대가 요청하는 참으로 큰 미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공감의 능력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준엄하게 꾸짖으십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루카 7,32) 

 

인간관계 안에서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 냉담함입니다. 무표정입니다.

분위기 한번 반전시켜보려고 생쇼를 다해도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별의별 짓을 다 해도 그저 심드렁한 얼굴입니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 극진한 사랑을 표현하지만, 그저 소 닭 보듯 멀뚱멀뚱 쳐다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똑같은 체험을 하셨습니다.

그릇된 신앙, 왜곡된 논리에 젖어 허우적거리며 죽음의 길로 빠져들던 율법학자들, 두렵고 경직된 얼굴로 하루하루 두려움 속에 힘겹게 살아가던 바리사이들의 삶이 너무나 안타까우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선구자로 세례자 요한을 당신에 앞서 파견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새 출발을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자는 마귀 들렸다’며 거부합니다.

그리고는 참수형으로 몰고 갔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이 있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고대했던 메시아 예수님이 도래하셨습니다.

이분까지도 ‘먹보요 술꾼’이라며 거부합니다.

십자가형으로 몰고 갔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결정적 실수 그 배경에는 경직된 신앙이 있었습니다.

새로움을 죽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완고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최고라는 뻣뻣한 목덜미가 있었습니다. 

 

결국 따지고 보니 부드러움이 인류를 구원합니다. 편안함, 친절함, 편안함, 넉넉함, 통틀어서 호감이 새 세상을 건설합니다. 

 

호감이 지닌 매력은 생명력입니다.

따뜻한 미소, 부드러운 음성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창출하는 호감 가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런 사람은 존재 자체로 매일 이웃들에게 큼직한 선물을 건네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에너지를 건네는 사람이며 행복을 주는 사람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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