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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5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9-15 조회수 : 130

복음: 마르 8,27-35: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는 것은, 그분과 내가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되는 때에도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오늘 복음의 베드로를 보면 그렇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힘없고 지친 자들을 위해 영과 예언을 받으신 야훼의 종으로 나타난다(이사 50,4). 그에게 온순과 겸손과 순명을 주시고(이사 50,5; 참조: 필립 2,8), 모든 것을 아버지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따르게 하셨다. 그리하여 모든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 때리고, 수염을 뽑으며 침 뱉음과 수치를 당한다(이사 50,6). 그러나 그는 주님 앞에 단 하나의 도움이 있음을 믿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 나름대로 느낀 점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물으신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던지시는 질문일 수 있다.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29절) 답한다. 하느님께 축성된 분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실 분으로 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정치적인 결정적 실현을 기대하고 있다(사도 1,6).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뜻으로 메시아를 알아듣지 않도록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신다. 어떤 착각도 하지 않게 하려고 첫 번째로 당신의 수난과 부활에 관한 말씀을 하신다(31-32절). 
 
여기서 제자들이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반응이 나타난다. 베드로의 모습이 그렇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메시아의 힘없는 무기력한 메시아를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 힘없이 십자가에 죽는 메시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베드로의 모습은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모습이다. 그리스도는 고통받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십자가를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이루시는 것인데 그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이 사탄의 일이며, 원수의 일이고 고소하는 자들의 일이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33절) 호통을 치신다.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 사막에서 사탄이 놀라운 메시아적 기적들을 행하도록 했던 것이나, 십자가 아래에서도 그 옆에 있던 이들이 세 번이나 십자가의 고통으로부터 내려오라고 했던 것처럼 베드로의 발언을 사탄의 일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책망하고 계시다(33절). 
 
그리고 이어서 충실한 제자의 모습을 말씀하신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끊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며, 자신의 십자가를 매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분을 따라야 한다고 하신다. 자기 자신의 목숨을 즉, 자기의 존재를 그분과 복음 때문에 잃어야 한다는 것이다(34-35절 참조). 그렇지 않으면 헛되이 망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렇게 인간은 자신을 구원하게 되며, 단지 인간적인 의지는 은총이 함께 하지 않으면 확실한 죽음만이 있을 뿐임을 말씀하시고 계시다. 
 
야고보 사도는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 그 신앙이 요구하는 행위를 실천하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강하게 말하고 있다. 믿음만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야고보 2,14). 만일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형제를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야고보 2,15-16). 진정 이 믿음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로 살아있지 않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야고보 2,17). “만일 믿음이 자비를 통해 실천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아무것도 가치가 없는 것이다”(갈라 5,6; 참조: 에페 6,25; 1테살 1,3). 
 
믿음은 하느님의 거룩한 은총이다. 이 은총이 나에게 진정한 은총이 되기 위해서는 그 믿음이 항상 현실과 일치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믿음은 외적인 환경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는 영적인 행위와 태도를 통해서 가장 확실하게 입증된다. 우리 신앙인들도 복음에 충실하다면, 형제애를 통하여 불의와 불평등으로 가득 찬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좋은 말만 늘어놓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더 나아가 믿음의 행동을 이루어나가야 한다. 믿음은 결코 자신의 이기주의 바람막이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편하지 못한 생활환경에서도 믿음을 실천적으로 실현해 나가야 한다. 이 믿음이 십자가 위에서 입증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베드로가 가이사리아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한 것이나, 또는 궁핍한 형제들에게 위로의 말만 해주는 것과 같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위로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우리의 생활을 통해 때로는 육체적으로도 함께 짊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신앙의 구체적인 실현을 살아가는 용기와 은총을 주님께 청하여야 하겠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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