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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4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9-14 조회수 : 166

복음: 요한 3,13-17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이마에 깊이 새겨져 있는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십자가라는 화두로 묵상을 해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 없는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꿈꾸지만, 우리네 인간 현실 안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너나할 것 없이 각자 등에는 저마다의 십자가 하나씩 짊어지고 때로 헐떡이며, 때로 용기를 내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십자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마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우리네 삶에서 기쁨과 슬픔, 고통과 행복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 같습니다.

돌아보니 행복과 불행이 끝도 없이 교차해온 나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도 영광과 승리로 가득했던 출애굽은 찰나의 순간이었습니다.

즉시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척박한 사막과 기약 없는 대규모 공동체 생활, 배고픔과 갈증이었습니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민수 21,5) 

 

보십시오. 우리네 지상 인생 여정은 그 누구든 어쩔 수 없습니다.

결핍과 고통 투성이입니다.

근원적 갈증과 배고픔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너그러운 마음이요, 고개를 들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관대함입니다. 

 

가끔 기가 막힌 이웃을 만납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꼬인 인생이 다 있는지?

저런 상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무리 둘러봐도 사방이 높은 벽으로 가로막힌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분들 앞에 뭐라 위로의 말을 드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기도 열심히 하면, 주님께 매달리면서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뭔가 상황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아무리 발버둥 쳐 봐도 삶은 여전히 거기서 거긴 분들 앞에 그저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잘 되기만을 바라시는 분이요 우리를 축복하는 하느님이라 믿었는데,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요, 십자가 투성이인 우리네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제게는 하나의 큰 숙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답을 가르쳐 주시더군요. 우리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만사형통, 승승장구,

지속적인 현세 축복을 외치는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의 지상에서의 삶 전체를 통해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추종의 대상인 예수님부터 고난의 인간, 배척당하는 인간, 십자가 죽음을 넘어서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타고 나셨음을 스스로 밝히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신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의 운명 역시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분처럼 이 세상에서 고난을 겪고, 때로 배척을 받고, 때로 죽음과도 같은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부활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교는 고통과 십자가 없는 부활을 절대로 외쳐서는 안 됩니다.

희생과 시련은 거부하고 달콤함과 안락함만을 보장하는 교회여서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 매일 다가오는 고통과 십자가를 소중히 여기며 고통과 십자가에 담긴 가치와 의미를

지속적으로 찾아 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왕이면 져야 할 십자가라면 기꺼이, 관대하게 지고 갈 때 생기는 한 가지 특별한 현상이 있습니다.

십자가가 가볍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십자가가 십자가가 아니라 기쁨이요 은총이요 축복으로 변화되는 느낌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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