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을 완주했다는 분을 만났습니다. 힘들지 않았냐고 여쭤보니, 처음에는 친구 따라 몇 코스를 다니다 보니 어느새 완주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나라 성지순례 완주하신 분들의 시작도 처음에 몇 군데의 성지 방문 후에 꾸준히 다니다 보니 완주하셨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완주하셨을 때의 기분에 관해 물으니, 거의 비슷한 답이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뻤습니다.”
처음의 작은 시작이 있고, 여기에 꾸준함이 더해져서 결과물을 내게 됩니다. 책 읽는 것도 그렇습니다. 장편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 두꺼운 것을 어떻게 읽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꾸준함을 가지고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큰 만족감과 기쁨을 갖게 됩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것도 이렇습니다. 분명 작은 시작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을 조금 느끼게 됩니다. 바로 이때 꾸준함이 동반되면 주님을 알아가며 큰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그 작은 시작 부분부터 포기합니다. 그리고 항상 이유를 만듭니다.
‘세상일이 바빠서, 미사가 재미없어서, 기도가 힘들어서, 기도해도 변하는 것이 없어서….’
주님과 함께하지 못할 세상의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시작에서 멈추고 꾸준함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꾸준히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신앙인의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기쁨은 얼마나 클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행복과 불행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가난과 굶주림, 슬픔과 박해를 겪는 사람은 행복하고, 부유함과 풍족함, 웃음과 칭찬을 누리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세속적인 것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은 여기서 멈추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채우려는 욕심과 이기심을 가질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지도 않고 결국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지 못하기에 불행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세상 것의 부족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계속해서 주님께 나아가면서 그분의 뜻을 따르게 되고 결구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지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워서 주님을 따르지 못하는 이유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처음 만나고, 그리고 꾸준히 주님을 만나고 함께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 선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신중하되 천천히 하라. 빨리 뛰는 것이야말로 넘어지는 것이다(셰익스피어).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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