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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9-08 조회수 : 230

마르코 7,31-37  
 
꽉 막힌 사람이 뻥 뚫린 사람이 되는 방법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말을 더듬는 이에게 말을 잘 할 수 있게 만드는 기적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셔서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그 방식은 당신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당신 침을 손가락에 묻혀 그의 혀에 대고는 숨을 내쉬시며
“에파타!”(열려라)라고 말씀하시는 상징적인 행위로 표현됩니다.
성령으로 우리가 열린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선 어떤 사람이 열리지 못한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김 씨 표류기’(2009)에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섬에, 여자 주인공은 자기 방에 스스로를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공간만은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집에 타인에게 열려 있느냐, 없느냐가 우리가 갑갑하게 닫힌 사람인지 활짝 시원하게 열린 사람인지를 결정합니다.  
 
C.S. 루이스의 책을 원작으로 한 ‘나니아 연대기’의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거의 성경 말씀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런던에서 시골집으로 대피한 네 남매의 이야기를 따릅니다. 숨바꼭질을 하던 중 루시는 우연히 그녀를 마법의 나라 나니아로 데려다 주는 옷장을 발견합니다. 결국 네 남매는 모두 나니아에 입성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마녀와 아슬란이라는 사자가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미 나니아에 한 번 들어가 하얀 마녀를 만난 에드먼드는 마녀의 약속에 유혹받아 형제들을
배신합니다.
에드먼드는 자신이 부모와 형제들로부터 가장 소외당하였다고 여기고 마녀의 헛된 약속에 자신을 종속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마녀의 잔혹함을 직접 목격하면서 그녀의 약속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그를 마녀의 손아귀에서 구해온 것은 아슬란입니다.
아슬란은 자기 목숨을 내어놓으며 에드먼드를 구합니다.
아슬란이 사라지자 마녀는 군대를 이끌고 아슬란의 군사들에게 진격하지만, 타인의 죄를 대신해 희생한 자는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마녀는 알지 못했습니다.  
 
에드먼드는 형제들과 아슬란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귀가 막혀 있었습니다.
그러니 형제들과 진실한 대화를 할 수도 없고 오직 악의 세력과만 대화가 통하였습니다.
혀도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슬란의 죽음으로 그는 해방됩니다.
그렇게 위대한 힘센 왕이 자기를 위해 죽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을 가진 자가 자기를 위해 죽을 정도로 모든 것을 가진 자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목숨을 아끼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닫히는 이유는 가진 것을 빼앗길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 두려움을 자아내는 존재가 각자 안에 있는 마녀입니다.
창세기에는 뱀으로 나옵니다.
그놈은 내가 가진 것이 없으니 다른 존재들에게 그것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봅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존재만을 받아들이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여진 이들은 그에게 먹힙니다.
이는 마치 사막에 홀로 세워진 한 채의 오두막과 같습니다.
길을 가는 지친 손님들을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도둑질하거나 그 집을 빼앗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은 다릅니다.
성모님은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습니다.
작은 오두막이 아닌 성전이 된 것입니다.
성전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하느님이십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부자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젊으셨을 때 돈이 아주 많았는데 그것을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자존심을 세우며 살다가 망하기 직전에 다다랐습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지금까지 자신의 부를 자랑해 왔는데 망하면 친구들이 비웃을까 봐 겁냈습니다. 점집에도 갔다가 결국 성당으로 돌아와서 십자가의 길을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는 장면에서 “사랑한다.”란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그녀를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그녀는 창피한 게 없어졌습니다.
성당으로 가서 바로 화장실 청소부터 하였습니다. 하느님을 가지면 다 가진 게 되기 때문에 더는 내가 무언가를 잃는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어서 열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도 신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을 명동성당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분의 집은 자기 집이 아니라 하느님의 집이었습니다.
이것이 성령을 받는 이들이 열리게 되는 원리입니다.
작은 오두막이 아닌 성전이 됨으로써 우리는 두려움 없이 모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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