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라는 책의 작가로 유명한 칼릴 지브란은 ‘우리의 불안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통제하는 데서 시작된다’라고 말했습니다. 크게 공감되는 말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심하다 싶을 정도로 통제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공부만이 아니라 취미 등의 일상생활까지 통제합니다. 자녀의 미래를 위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라는 불안 때문입니다. 하지만 통제할수록 더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자기의 통제로 아이가 잘못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더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큰 질병 중 하나가 마음의 병입니다. 이 마음의 병 한 가운데에는 늘 불안이 있습니다. 단순히 미래에 관한 생각, 걱정 때문이 아니라, 나와 가족과 또 만나는 이웃을 통제하려는 욕심에서 마음의 병이 더 커지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많이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보다 잠도 줄이는 등 더 나 자신을 채찍질했었습니다.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미래는 나의 시간이 아닌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시간입니다. 결국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을 더 의미 있게 사는 데 집중하다 보니 저절로 미래의 ‘나’가 바뀌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미래를 통제하려고 해서 굳이 불안 속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통제가 필요한 유일한 시간은 지금. 바로 ‘현재’뿐입니다.
바리사이 몇이 예수님께 항의합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통제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바리사이를 비롯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불안했습니다. 군중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미래가 불안해집니다. 왜냐하면 당시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상황이었고, 군중이 모이는 것을 싫어했던 로마는 군대를 보내서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불안에 예수님과 제자들을 통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봐야 할 것은 ‘지금’이었습니다. 지금 자기들과 함께하는 예수님을 알아야 했고, 지금 예수님 뜻에 맞춰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불안으로 통제를 계속해서 합니다. 자기를 통제하고, 가족을 통제하고, 이웃을 통제하고…. 이렇게 불안으로 통제하려고 할 때, 지금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분명히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지금에 충실한 우리와 함께해 주십니다.
오늘의 명언: 내면의 불씨는 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만나는 순간, 그 불꽃은 다시 타오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되살린 이에게 감사해야 한다(알버트 아인슈타인).
(조명연 마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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