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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8-28 조회수 : 234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마태오 23,27-32 

 

왜 자녀는 미운 부모의 잘못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여자 주인공 테레자는 어머니를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어머니와 닮은 남자를 사귑니다. 어머니는 외도 하는 것을 딸에게 자랑할 정도였고 테레자를 무시하였습니다.

테레자는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어머니와 비슷한 바람기가 있는 의사 토마시와 사귑니다. 

 

토마시도 자기 내연녀인 사비나에게 테레자를 소개할 정도로 사랑을 가볍게 여깁니다.

어쩌면 테레자가 토마시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을 수 있습니다.

결국 둘이 반씩 양보하는 상황이 됩니다. 토마시는 결혼을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테레자는 자신도 외도하면서 토마시에게 미안함을 갖습니다.

이런 사례는 너무도 많습니다.

부모를 원망했지만, 결국 부모를 닮아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부모를 싫어하면서도 부모를 닮거나 자기가 싫어하는 부모와 같은 배우자를 만나는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에서는

분명히 부모 중 한 명과 경쟁을 하게 됩니다. 

 

테레자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이 어머니보다 우월해질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술주정뱅이 아버지에 대해 그 책임이 어머니에게 있다고 믿는 딸은 자신도 술주정뱅이와 결혼해 어머니보다 잘사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누군가를 심판하면 이제 나는 그 누군가와 경쟁 관계가 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그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십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속이 썩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그들이 조상들을 비난하며 여전히 그들의 조상을 자기 조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조상들을 비난하며 자신들은 조상들처럼 살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조상들의

전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부모를 비난하며 부모처럼 되는 경우와 같습니다.

아예 그 족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족보를 주러 오셨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에게는 ‘새로 태어남’이 새로운 족보에 들어옴과 같습니다.  

 

영화 ‘오블리비언’(2013)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지구인을 위해 외계인과 싸운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를 만든 것이 외계인이고 그는 지구인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겉은 지구인이지만 조상은 외계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우리 안의 조상을 모시고 삽니다. 그리고 그 조상이 산 대로 삽니다.

만약 ‘진화론’을 믿는다면 우리 조상은 누가 되겠습니까? 원숭이가 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원숭이를 비웃지만, 실상 사는 것은 원숭이와 다름없이

비윤리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개구리가 되고 싶은 전갈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참으로 착했지만, 소풍 가는 날 개울을 건널 때는 자신이 개구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영을 할 수 없는 전갈은 자기를 태우고 가는 개구리를 독침으로 찔러 개구리도 죽고 자신도 죽습니다.

자기 조상이 전갈이라고 믿으면 아무리 자기가 전갈의 조상들을 비난하더라도 그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개구리처럼 온순하여지려면 그냥 개구리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와 맞서서 이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래봐야 그 부모의 수준밖에 안 됩니다.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려면 인간을 비판하며 그 비판하는 인간들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 결심해도 소용없습니다.

여전히 인간의 다른 부족한 면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조상으로 여기면 그들을 비난해도 그들의 습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와가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온 갈비뼈로 탄생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와 물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냥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이면서 신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비난할 이유도 없습니다.

자신이 신처럼 살지 못하는 것만 보이며 인간의 죄의 습성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비난하는 것으로는 절대 그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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