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첫 복사를 서는 아이를 보면 너무 예쁘고 귀엽습니다. 그러나 긴장해서 초조해하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어떤 아이는 첫 복사를 서기 전에 자기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 복사하기 싫어.”
복사서는 두려움에서 피하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긴장하는 새 복사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틀려도 안 틀린 척하는 것이 복사야.”
그렇게 해야 사제도, 또 신자들도 분심에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연습을 계속하면 실제로 대범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불안해하면서 포기하는 곳이 아닙니다. 대범하게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곳이고 또 그런 삶을 살아야 할 세상입니다. 그래서 늘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거센 파도와 같은 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두려워도 무섭지 않은 척, 틀려도 틀리지 않은 척,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이런 식으로 행동하다 보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거뜬히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사랑의 주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하시기에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 안에 머무는 삶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 삶을 더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주님 안에 머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바르톨로메오 사도입니다. 성경에는 ‘나타나엘’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여쭙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조금 뚱딴지같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무화과나무’는 메시아적 평화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이미 하느님을 따르는 삶을 충실하게 살아온 참으로 거짓 없는 사람임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알아주는 예수님 안에서 그는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라고 자기 신앙을 고백합니다. 자기를 가치를 알아주는 예수님을 통해 더 올바른 길, 바로 주님과 함께하는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 다 세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불안해하고 걱정하면서 포기하는 삶이 아닌, 우리를 믿어주시는 주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르톨로메오와 같은 하늘 나라에서의 큰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진정한 지혜는 한 순간에 발견할 수도, 언제까지나 깊이 감춰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프랑수아 를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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