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승천 대축일
‘머리카락 색깔 측정기’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단순히 전 세계의 모든 머리카락을 인종을 구별한 것이 아닐까 했더니, 사실은 인종 차별에서 나온 측정기라고 합니다. 1927년 오이겐 피셔는 아리아인(독일인)의 인종적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종 혼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인종적 순수성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이 ‘머리카락 색깔 측정기’였습니다.
이 인종 차별적인 이론은 곧바로 사람들에게 거부되었을 것 같지만, 반대로 뉘른베르크법에 영향을 끼쳐서 1930년대와 제2차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나치 체계를 뒷받침했습니다. 유다인, 흑인, 로마니인 등을 표적으로 삼아 박해하거나 살해하는 행동을 합법화한 것입니다.
당시의 아리아인들은 이런 생각과 결정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아리아인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집단주의에 빠져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던 수많은 박해, 지금은 분명 당시의 사람들이 잘못 판단했다고 말하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예수님이 잘못되었고 또 국가 반대하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했고 단죄했습니다.
지금의 내 판단이 무조건 옳을까요? 아닙니다. 그 기준을 이 세상의 테두리에 맞춰서 따져 들어가면 옳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주님 기준으로 따져보면 틀릴 때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자기 기준에 맞추는 교만의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교만의 마음으로는 제대로 판단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겸손의 마음으로만이 세상의 기준을 접고 주님의 기준에 맞춰서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기준을 철저하게 지켰던 분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이십니다.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겸손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태중에 하느님의 아드님이 계신대도 먼저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십니다. 이에 엘리사벳은 깜짝 놀라서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43)라고 말하지요.
이 밖에도 성모님의 겸손은 끝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어버렸을 때, 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했을 때,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으셨고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끝까지 지키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하느님께 기준을 맞춰서 사신 분,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하늘로 불러올리셨습니다.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세상이 아닌 철저하게 하느님께 맞춰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 떼어 보면 모두 영리하고 분별이 있지만, 집단을 이루면 모두가 바보가 되고 만다(프리드리히 실러).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