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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5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4-08-15 조회수 : 237
 [성모승천 대축일] 
 
복음: 루카 1,39-56 
 
오늘 우리 모두는 또 다른 성모님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결핍과 흠결투성이인 저 자신의 모습, 백번 천번 결심을 하지만 크게 변화되거나
성장하지 않은 제 모습에 실망도 큽니다.
동료 형제들의 모습도 개진도진, 거기서 거기라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가뭄에 콩나듯이 멋진 형제를 만납니다.
부족함과 미성숙을 극복하고 하루 하루 일취월장합니다.
주어진 탈란트도 잘 활용해서 자신의 능력치를 극대화시킵니다.
그런 능력치를 바탕으로 공동체와 교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니, 선배 입장에서 너무나 감사하고 뿌듯합니다. 
 
성장은커녕 퇴보하고, 겨우겨우 현상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니
참으로 부럽습니다.
성장하지 않는 인생, 성장하는 않는 신앙, 성장하지 않는 공동체, 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지. 
 
이런 면에서 오늘 우리가 예의주시해야 할 분이 계십니다.
오늘 대축일을 맞이하시는 성모님이십니다.
그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이 올라간 분이십니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서 가장 큰 진보를 이룬 분이십니다. 
 
성모님은 오늘 우리에게 한 인간이 얼마나 변화될 수 있는지, 얼마나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지,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화’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잘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은 우리 모두에게도 희망과 자극을 주는 축제입니다.
예수님의 잉태와 출산, 양육을 위한 성모님의 큰 희생과 노고도 대단한 것이지만, 우리가 좀 더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은 성모님의 신앙여정입니다. 
 
한 평생 다양한 위기와 고통, 큰 십자가와 험난한 가시밭길이 성모님 생애 내내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태도를 보십시오.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머뭇거리지 않으셨습니다. 
 
희미한 안개 속의 위험한 길을 걸어가시면서도 그 발걸음이 늘 당당했습니다.
천사를 통해 들려온 하느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기고 매일 새롭게 결코 만만치 않은 신앙의 길을 기쁜 얼굴로 걸어가셨습니다. 
 
성모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하셨고, 사랑의 힘으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낳으셨습니다.
이제 성모님께 주어졌던 역할이 우리 모두에게 확대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 안에 예수님을 잉태하지 못한다면, 그 옛날 성모님의 아기 예수 잉태는 그저 오래전 이야기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아기 예수님의 잉태는 되풀이되어야 합니다. 
 
나도 힘들지만 미혼모가 낳고 떠난 아기 한 명을 입양하면 그것은 내가 아기 예수님을 낳는 일입니다.
우리 가족도 힘들지만 도움이 필요한 보육시설 아동들의 구체적 결핍을 채워주는 일은 어떤 면에서 내가 직접 또 다른 아기 예수님을 낳는 일입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필요에 응하는 일, 작지만 시간 내어주는 일은 또 다른 아기 예수님을 낳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어디 다른 하늘 아래서 멀리 계셔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늘 새롭게 거듭 태어나셔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는 또 다른 성모님이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처럼 아쉽지만 또 다시 나를 떠나고, 안타깝지만 어제와 결별하고, 늘 새로운 여행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부단히 다시 태어나실 것입니다. 
 
인간 존재라는 것 때로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때로 작은 울타리에 갇혀 괴로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무한히 성장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만한 존재가 역시 인간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있음을, 성모님처럼 큰 도약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결국 우리 안에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늘 현존하고 계심을 굳게 믿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1 / 3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루카 1,39-56 
 
성모님께서 육체를 지니고 승천하셨다는 의미는?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모 승천은 그리스도의 소명에 참여한 우리가
모두 미래에 받게 될 영광을 미리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광은 노력 끝에 얻어지는 열매입니다. 아무 공로도 없이 받을 수 있는 영광은 없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종목에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우리나라 선수들은 동메달의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군 생활이 면제되는 특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단 4분만 뛰고 군 면제를 받은 선수도 있었습니다.
바로 김기희 선수입니다. 
 
그는 뛰어난 선수가 아니어서 단 한 번도 운동장에서 뛰어보지도 못하고 벤치만 지켜야 했습니다.
3·4위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홍명보 감독은 남은 교체 선수 카드 한 장을 김기희 선수를 위해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단 1분이라도 승리에 공헌한 선수라야 올림픽 메달의 영광을 받을 자격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의 영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치가 있는 일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자기 동네에서 아무리 골을 많이 넣어도 올림픽 메달을 따거나 군면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모님께서 육체를 지니고 승천하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육체도 하느님 영광을 위해 쓰였다는 뜻입니다.
저는 꾸준히 만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제가 있는 본당의 신자들이 아닙니다.
이전에 담당했던 본당이나 꾸르실료 등에서 봉사했던 분들을 만납니다.  
 
제가 지금도 그들을 만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말하면 그분들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필요해서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영성관에 있을 때 저를 도와주는 오산성당 자매들이 있었습니다.
영성관 사정상 사제관 도우미를 둘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세 분의 자매들이 매주 한 번씩 와서 청소도 해 주고 빨래도 해 주고 밑반찬도 해 놓고 가곤 했습니다. 
 
사실 저도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 일을 도와주는 이들이라면 그 육체도 상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혼자 다 하지 않으시고 키레네 사람 시몬이 당신 십자가를 함께 지도록 하셨습니다.
모든 영광은 구원의 십자가에서 오기에, 예수님은 당신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소명을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 당신 영광에 참여시키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 구원에 육체적으로도 필요한 분이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아드님이 인간이 되려고 하시는데 그 아들에게 인성을 내어줄 인간이 필요했는데,
흠 없는 육체를 지니신 분은 성모 마리아밖에 안 계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외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열매: karpos)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엘리사벳이 그리스도를 성모님의 ‘열매(karpos)’라고 표현한 데는 이미 성모님이
‘주님의 어머니!’가 되기에 합당한 분이란 뜻이 들어있습니다.
가지에서 열매가 맺히는데 그 열매는 분명 나무에서 수액이 흘러들어와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성모님의 열매라 표현한 이유는 성모님께서 그리스도께 무언가를 주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 죄가 없어야 하는데 그 나무에 죄가 있다면 열매가 온전할 수 없습니다.
성모님만이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시며 당신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하신 분입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내리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니 죄가 없는 육체는 본래 썩을 필요가 없습니다.
생명 자체이신 분께 계속 생명력을 얻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의 성인 중에 몸이 썩지 않는 성인들이 매우 많습니다.
루르드의 성녀 베르나데트는 150년이 지났지만, 정말 아름다운 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성모님의 육신을 지닌 승천으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마음만 주님께 봉헌한 분들이 아니라 육신도 주님의 뜻에 봉헌하여 그만큼 주님께서 많이 필요로 하신 육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설교하실 때 사용한 성대가 썩지 않고 어떤 분은 세례 주던 오른팔과 선교하기 위해
다니던 발만 썩지 않고 어떤 분은 심장이 썩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그만큼 완벽히 봉헌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머리카락까지도 다 지니고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봉헌한다면 주님은 그것이 영원히 하늘 나라에서 영광을 받을 것으로 축성하여 돌려주십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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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 [성모승천 대축일] 
 
복음: 루카 1,39-56: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신 마리아 
 
오늘은 육신과 영혼이 함께 영광을 받으신 동정 마리아의 승천 대축일이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마리아에게서 결정적으로 완성되고 있다. 마리아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에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마리아의 영광은 마리아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일어나게 될 일의 표징으로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다.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인간 부활의 근거가 됨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 세상을 재건하는데 첫 결실로 다른 결실의 보증이 된다는 것과 둘째로 그리스도는 모든 구원받은 자들을 당신 안에 모아들이시는 새 아담이시다. 그러기에 모든 인간은 그분 안에서 죽음을 이길 것이다. 오늘 독서의 내용에 마리아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리아도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로부터 부활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와 우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마리아는 죽음의 지배를 전혀 받은 분이 아니다. 죄가 마리아를 스쳐 가기조차 하지 않았다. 마리아에게 있어 마지막 원수(1코린 15,26)는 이미 원죄에 물들지 않은 잉태의 순간부터 파멸되고 말았다. 
 
묵시록은 마리아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메시아가 태어나야 할 메시아 공동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메시아는 용, 사탄에 의해 죽음의 올가미를 쓰게 되지만, 하느님은 그를 보호하여 영광의 왕좌에 앉히실 것이고, 메시아 공동체에 신비스러운 광야의 피난처를 제공하시어 보호해주실 것이다(묵시 11,1-6). 여기에 여인으로 나타나는 메시아 공동체는 박해와 전쟁의 소용돌이에 직면한 교회이다. 이 교회의 모습을 나자렛의 마리아를 연상케 한다. 그것은 요한이 마리아에게서 교회의 이상적 표상의 실현뿐만 아니라, 항상 다시 태어나야 하는 메시아 공동체의 모성적 기능도 인식하여 교화와 마리아를 친밀히 결합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회 헌장은 “은총의 계획 속의 마리아의 모성은 천사의 아룀을 듣고 충실히 동의하신 그 순간부터-이 동의는 십자가 밑에서도 망설임 없이 지속되었다-뽑힌 이들의 수가 찰 때까지 영구히 끊임없이 계속된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후에도 이 구원의 역할을 그치지 않으시고 계속하여 여러 가지 당신 전구로써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우리에게 얻어주신다. 당신 모성애로써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이 지상 여정에서의 위험과 고통 중에 있는 것을 돌보시어 복된 고향으로 인도해 주신다.”(62항) 말하고 있다. 이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야말로 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과 승리 권세의 가장 고귀한 전리품이라 할 수 있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사실과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믿음과 신적 모성에 대해 찬양하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42-45절). 마리아는 다른 여인들과 다름없는 여인이었지만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그것은 자신의 위대성을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선은 마리아가 엘리사벳과 요한에게 봉사하시지만, 나중에는 인류 역사 안에서 모든 사람을 섬길 것이다. 오직 생명과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때만이 어머니가 될 수 있다. 마리아는 자신 안에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모든 것을 나누신다. 마리아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신적 모성에 대한 소식을 알리는 순간에 발하신 동의로 이미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어 하느님의 가장 충실한 도구가 되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마리아는 “사람이 되신 말씀”(요한 1,14)을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종이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승천에 이르기까지 마리아 안에서 충만히 실현되었다. 
 
다음에 엘리사벳의 찬사에 대한 응답으로 “마리아의 노래”가 나온다. 모든 내용은 하느님께 다시 바쳐지고 있다. 그분만이 찬미를 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마리아가 이 세상의 역사의 한 가운데 있음을 깨달았음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48절). 그것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무슨 일을 맡기셨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마리아는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인간의 생각과 가치관과는 다른 하느님의 업적을 찬미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51-53절). 
 
하느님은 인간들의 길을 따르는 분이 아님을 마리아는 알려 주고 있다. 마리아의 위대함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당신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시고, 다른 사람을 위해 당신의 것을 나누시는 구체적 사랑의 행위이다. 거기에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마리아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그 마리아의 모습이 모든 생의 의미를 현세에서만 찾으려는 우리가 깊이 알아들어야 할 점임을 생각하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항상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닮을 수 있는 삶을 노력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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