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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8-14 조회수 : 262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마태오 18,15-20 

 

면죄부와 대사는 어떻게 다른가? 

 

 

오늘 복음은 교회의 권위에 대한 마태오 복음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시며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하늘 나라는 죄와 벌이 모두 사해져야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교회에서 파문당하면 하늘 나라에서도 파문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개신교는 그러나 교회의 이 죄사함과 벌까지 면해주는 권한을 교회에 주었음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며 가톨릭은 돈을 받고 죄를 용서해 준다는 뜻의 ‘면죄부’를 팔아 바티칸 베드로 성당을 지었다고 주장합니다.  

 

우선 교회에 죄와 벌의 모든 용서의 권한이 주어졌음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며

그 치유가 죄의 용서의 권한이 사람에게 주어졌음을 보여주는 표라고 하신 복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영화 ‘나라야마 무사시코’에서는 고려장과 같이 70세가 넘으면 먹을 것을 줄이기 위해 부모를 산에 버리는 옛 일본 풍습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이 주저하는 것을 보고 일부러 몰래 튼튼한 앞니를 부러뜨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머니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둘째 아들이 첫 경험을 하는 날 큰아들의 지게에 실려서 산에

오릅니다.

새로 태어나면 누군가 죽어야 하는 상징을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한 일본의 전설에서는 자기 아내를 살리기 위해 노모의 간을 빼서 달리는 아들에게 어머니의 혼령이 나타나 “천천히 가라. 넘어질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습니다. 하느님도 아드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다는 뜻입니다. 나라야마 무사시코에서는 어머니를 버리고 왔더니 슬퍼하는 기색 전혀 없이 어머니의 옷을 이미 나누어 걸치고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영화가 마무리됩니다.

하느님께서 교회를 낳으셨고 교회를 통해 구원의 백성이 탄생하기를 원하셨다면 ‘다’ 주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면죄부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면죄부는 죄를 사해준다는 뜻인데, 죄사함을

돈으로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는데 그 은총을 죄인에게 돈을 받고 팔 수는 없는 일과 같습니다.

죄와 벌은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돈을 받고 죄를 사해준다는 식의 ‘면죄부’라는 말은 가톨릭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고 개신교가 만들어낸 말입니다.  

 

그들이 면죄부라고 말하는 단어는 라틴어 ‘은총의 문서’(Litterae indulgentiales)의 번역입니다.

이는 분명 ‘대사’(Indulgentia)와 차이가 있습니다.

대사는 본래 ‘은혜, 자비’의 뜻으로 로마 제국 시대 특별한 날에 이뤄지는 형벌의 사면을 가리키는 법률 용어입니다.

대사는 죄의 용서와는 관계없고 일정한 전제조건(기도와 회개, 성지순례, 자선, 교회에 대한 기부 등)을 채울 때 죄에 대한 보속을 감면하거나 전부 없애주는 은총입니다.

대사는 교회가 죽은 이들의 잠벌을 없애주려는 목적도 있지만, 더 큰 목적은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신앙인의 신심의 발전에 있습니다.  

 

16세기에는 대사 관행이 널리 퍼졌고 종종 남용되었습니다.

일부 성직자, 특히 독일의 요한 테첼(Johann Tetzel)과 같은 인물은 베드로 성전 재건을 명목으로 사람들이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사거나 미래의 죄에 대한 용서를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면죄부를 판매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방침이 아닌 당시 돈으로 잘못을 되갚는 게르만족의 전통과 결합한 잘못된 관행이었습니다.

교회는 트렌트 공의회(1545~1563)에서 공식적으로 은총의 문서 판매를 금지하였고 1570년에는 대사를 거래하고자 하는 자들을 파문시킨다는 조항을 추가하였습니다.  

 

정리하자면, 하느님께서는 교회에 죄를 용서하는 권한과 벌을 없애주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죄와 벌을 함께 용서해 주지 않는 이유는 죄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느껴봐야 죄의 무거움을 느끼고 다시는 죄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다윗이 병적조사를 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흑사병이 들게 하시는 벌은 주셨습니다. 교회가 벌을 사해주는 대사 제도를 시행하는데 은총은 돈을 주고 사고팔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제도는 결국 신자들의 신심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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