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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8-12 조회수 : 291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마태오 17,22-27 

 

이 세상에서 천국을 살려면: 무분별의 지혜  

 

 

몇 년 전에 아이들과 물놀이를 가서 한참 물을 뿌리며 노는데 구석에 앉아있던 고등학교

남학생들로 보이는 아이 중 한 무리에 물이 조금 튀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하나는 기분이 매우 나쁘다는 듯 저를 째려봤습니다.  

 

물놀이 시설에서 물속에 앉아서 얼굴에 물이 조금 튀었다고 해서 그렇게 기분 나빠 할 것이면 물 밖에 앉아있던가 물놀이를 오지 말아야 할 텐데 굳이 거기 앉아서 당연히 튀는 물에 기분 나빠하는 아이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어른에게 무례하기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저의 분별심을 잠시 접고 아이들의 자존심을 상해주지 않기 위해 정중하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는 학교 선생님처럼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심각한 자세로 돌아앉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행복하지 않은 것을 남 탓을 하려고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심이 극도로 치솟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분별심을 없애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한다는 것도 옳지 않다고 여깁니다.

또 성전세를 내는 것도 어쩌면 자존심 상해 하십니다.

예수님은 임금의 아들이 궁궐에서 세금 내며 살 필요가 없는 것처럼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당신도 성전에서 세금을 바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라고 명하십니다. 

 

 당신이 가진 돈을 주시지 않고 물고기를 잡아 주라고 하시는 것은 하느님께 바치는 것은 주님께서 어떻게든 채워주신다는 뜻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한화로 2만 원 정도 하는 한 스타테르 동전을 문 물고기가 베드로가 던진 낚시에 잡힐 확률은 실제로 없다고 보아도 무관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모르는데 뭐를 판단하니? 너의 판단을 멈추어라!” 

 

사람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분별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분별심이 없습니다.

부모가 다 알아서 분별해주기 때문입니다. 분별심은 ‘나’가 자신을 지키려고 선을 긋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어린아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고 맹수와 함께 뛰노는 곳입니다.

나를 지켜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적을 때 분별심이 커지고 그 자아 때문에 사람은 고통 속에서 삽니다.

그러다 회개하지 못하면 천국 무분별의 세계에서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는 장 발장과 자베르 경감의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장 발장은 빵 한 덩어리를 훔친 혐의로 19년 동안 감옥에서 복역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알듯이 주교님의 무분별한 자비심으로 회개하여 신분 세탁하고 존경받는 시장이자 공장 소유주가 됩니다. 

 

자베르 경감은 법과 사람은 변할 수 없다는 생각을 깊이 믿는 완고하고 냉혹한 경찰관입니다.

그는 가석방을 위반한 장발장을 자신의 도덕적 의무로 재판에 회부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때 1832년 파리 봉기 동안 장발장은 혁명가들에게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자베르를 죽일 기회를 얻습니다.

이미 옳고 그름의 세상에서 발을 뗀 장발장은 복수하는 대신 이렇게 말하며 그를 풀어줍니다.  

 

“당신은 자유롭고 조건이 없습니다. 거래나 청원도 없습니다.

내가 당신을 비난할 것은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의무를 다한 것입니다. 더는 없습니다.” 

 

이 자비로운 행동은 자베르의 세계관을 완전히 깨뜨립니다.

그는 장발장의 친절함과 그가 받은 자비와 법과 정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조화시킬 수 없습니다.

자베르의 입장에서는 죄수가 그러한 연민을 보일 수 있고 자비가 법을 초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법에 대한 의무와 그가 받은 자비 사이의 내부 갈등에 대처할 수 없었던 자베르 경감은 궁극적으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센 강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합니다. 

 

나를 품고 계신 분이 정의 자체이신 분입니다. 그분의 정의는 언제나 옳습니다.

그러니 나의 분별심을 그분께 봉헌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린이처럼 판단할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어 자비심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나를 지옥으로 만드는 자아가 하느님의 품 안에서는 할 일이 없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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