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복음: 요한 12,24-26
고통을 건너뛰는 행복, 희생없는 성공을 경계합시다!
저희 피정 센터는 바야흐로 대목입니다.
이박삼일 일정으로 아이들이 나가고 들어오고, 적막하던 어촌 마을이 시끌벅적합니다.
목청껏 소리 지르면서 신나게 뛰놀고, 야무지게도 잘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다들 흐뭇해합니다.
무대 위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뒷바라지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동료 사제와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면서,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슬퍼하시겠냐?”
“젊을 때 공부 열심히 안한 결과!”라는 둥 농담을 주고받으며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하나!
뭐든 거저 되는 것은 없다는 것,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 행사가 성공리에 치러졌다면, 반드시 누군가의 묵묵한 희생과 헌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조용히 땅에 떨어져 썩고 죽는 밀알 영성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
아버지께서 부여하신 지상에서의 과제를 120퍼센트 완수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앞에 남아있는 마지막 관문인 수난과 죽음의 길을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남기시는 말씀의 핵심 키워드 역시 ‘밀알 하나’였습니다.
내어놓음이나 희생, 변화나 쇄신, 결국 죽음을 거부하는 밀알은 언제까지나 그저 한 알 밀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기꺼이 자아를 포기하고 길을 떠날 때,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성장과 변화,
열매와 발전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이비 교주들이나 이단자들이 크게 강조하는 바가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고통을 건너뛰는 행복입니다.
희생이나 헌신없는 성공입니다. 말도 안되는 기적의 연출입니다.
십자가 길 대신 꽃길 보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광의 길에 참여하기 위해 수난과 죽음은 필수라고 강조하십니다.
두렵고 떨렸지만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용감하게 수용하십니다.
내적인 갈등이 커질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께 의탁하며, 언젠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드러날 아버지의 영광을 꿈꾸며, 얼마 남아있지 않은 당신의 여정을 힘차게 걸어가십니다.
제자인 우리들 역시, 스승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열심히 따라 걸어가야겠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한 배에 승선한 운명 공동체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운명은 곧 우리들의 운명입니다.
우리도 두려움을 떨치고 그분께서 선택하신 수난과 죽음의 길, 그러나 영광의 길을 기꺼이 선택해야겠습니다.
죽음은 오늘 제자들인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로 다가옵니다.
고통이 극심할 때, 포기하고 싶어질 때는 ‘죽을 각오’로, 더 열심히 이 세상을 살아가야겠습니다.
미운 감정이 폭발할 때는 순교자의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고 용서해야겠습니다.
예수님 한분의 희생과 죽음으로 온 세상과 인류에게 구원이 다가왔듯이, 오늘 내 작은 희생과 헌신, 작은 죽음을 통해 작게나마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오늘 이 작은 나의 희생과 봉사, 작은 죽음이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스승님의 십자가 길에 깊이 동참하는 사랑의 길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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