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16,24-28
하나뿐인 우리의 목숨, 대체 무엇을 위해 바칠 것입니까?
우리가 일상 안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왜 그리 사소한 것에 목숨을 겁니까?” 저도 돌아보니 참 많이 부끄럽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그리도 혈안이 되고 목숨을 걸 듯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단 하나뿐인 목숨, 시시한 대상, 스쳐 지나가는 대상,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대상에 목숨을 걸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보다 고결하고, 보다 가치있고, 보다 의미 있는 대상에 목숨을 걸고 올인을 해야 하겠습니다.
더 늦기 전에 그 최상의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마태오 복음 안에는 목숨이란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우리네 인생에서 목숨,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도 발버둥을 칩니다.
다들 목숨은 연명하기 위해 갖은 수모와 고초를 겪으면서도 용하게 견디어 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이 우리가 그토록 중요시 여기는 목숨이라는 것이 또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습니다.
시편 작가의 표현처럼 우리가 아무리 난다 긴다 하더라도 숨 한번 끊어지면 순식간에 흙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무한한 가능성과 능력을 소유한 인간이지만, 3분, 5분 숨 못 쉬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만 목숨과 관련해서 주어지는 과분한 특전이요 은총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목숨은 세상 사람들의 목숨과는 철저하게도 차별화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물학적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또 다른 목숨이 시작됩니다.
영원히 지속될 영생을 시작하는 영혼의 목숨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이요 축복인지요.
오늘 우리는 과연 하나뿐인 우리의 목숨, 대체 무엇을 위해 바칠 것인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라는 주님의 역설적인 초대 앞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 묵상해봐야겠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 또 다른 세상에서 영원한 목숨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주님 사랑 안에 길이 생명의 호흡을 누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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