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간 금요일]
마태오 16,24-28
자녀를 많이 낳음이 가장 행복한 투자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진정 인생이 ‘투자’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투자는 이익을 바라고 하는 행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행위에 따라 그것을 갚아주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니 투자라는 개념이 맞기는 한 것 같습니다. 또 예수님 자신도 ‘달란트의 비유’(마태복음 25:14-30)에서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능력을 투자하는 삶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면 투자로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일까요? 돈이나 명예, 쾌락 등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것은 남는 게 없습니다.
투자한 것이 회수되는 때는 죽음 이후일 것입니다.
죽음 직전에 돈을 덜 번 것을 후회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가평 크리스월드레지던스 박지형 대표가 위암 복막 전이 4기로 6개월~1년 선고받고 주위에 죽어가는 암환자들을 보며 느낀 것, 곧 사람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보다도 ‘잊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잊히지 않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예는 많이 있습니다.
목숨을 바친다는 말은 투자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삶은 교회를 낳으시고 교회 안에서 당신이 기억되게 하는 삶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교회는 교회의 탄생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매 미사 때 기억합니다.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죽음의 고통을 이깁니다. 또한 그렇게 교회를 낳았을 때 영원한 신랑과 같으신 아버지께서 아드님께 어떤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나치 수용소에 끌려간 아버지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아들을 살리고 좋은 아빠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에서 아버지는 목숨을 투자합니다.
그런데 인생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특별히 최저출산국이고 자녀를 키움이 행복보다는 고통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렇더라도 더 큰 고통은 나를 기억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고통이 가장 큰 고통임을 깨닫게 하도록 우리는 노력할 의무가 있을 것입니다.
성녀 지아나 베레타 몰라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이탈리아의 소아과 의사입니다.
임신 중에 합병증이 발생하자 그녀는 위험을 알면서도 자신의 생명보다 자녀의 생명을 우선시하기로 했습니다.
지안나의 사심 없는 결정으로 인해 출산 직후 사망하게 되었지만, 그녀가 남긴 사랑과 희생의
유산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2004년 가톨릭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됐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녀에게 엄마가 생명을 바쳤음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진정한 투자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성인, 성녀입니다.
이레나 센들러(Irena Sendler)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약 2,500명의 유대인 어린이들을 바르샤바 게토에서 밀수입하여 구한 폴란드의 사회복지사였습니다.
그녀는 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그중 많은 아이가 비유대인 가정에 맡겨졌습니다.
그녀는 심한 고문과 사형선고까지 받았습니다.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노벨상은 타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행복하다고 말하며 98세까지 사셨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젠 제가 구한 아이들뿐 아니라, 그들의 손자와 손녀들까지 저를 찾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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