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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9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8-09 조회수 : 195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16,24-28: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24절).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강요가 아니고,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선택이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25절). 목숨을 얻는 것과 목숨을 잃는 것은 구원과 멸망과 같다. 예수님은 “사람이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26절)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삶을 살면 파멸을 맞게 되며 그것은 되돌릴 수 없다. 이것이 목숨을 잃는 것이며 멸망이다. “나 때문에 자기 생명을 잃는 이런 사람은 오히려 생명을 구하고 지키게 될 것이다.”(오리게네스, 마태오 복음 주해 12,26).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26절) 사람에게는 죽음을 면하게 해줄, 생명 대신 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구원을 위해서 아무것도 내줄 것이 없는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1베드 1,19) “값을 치르고”(1코린 6,20)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그분을 우리는 어떻게 따르는가?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27절)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오신다는 것은 아버지의 영광과 아드님의 영광이 같다는 것이다. 이 영광은 하느님의 영광이며, 하나의 영광이다. 아드님이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있듯이 우리도 그 영광에 참여하게 해주실 것이다. 

 

영광에 참여하기 전에 그분은 심판관으로서 심판과 엄격한 판결에 대해 말씀하셨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28절) 우리는 이제 선택만이 남아있다. 십자가의 선택이다. 신앙생활은 끊임없이 십자가를 선택하는 일의 연속이다. 계속되는 자신과 싸움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데 따르기를 원하지 않는 나 자신을 끊고, 버리고, 죽이는 삶을 통하여 주님께 나아가며, 주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리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죽음을 맛보셨고, 신앙인들에게도 이미 죽음의 맛을 보여주셨다. 말씀에 행동이 따른 것이다. 그분을 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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