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간 수요일]
마태오 13,44-46
나는 커다란 진주를 팔려고 이리저리 들고 다니는 거지 아이와 같다
사람에게 가치가 있을까요? 그리고 나와 나의 삶에 가치를 따지는 게 의미가 있는 일일까요?
진화론에서는 사람이나 아메바, 모기나 기생충의 가치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각자가 생존을 위해 진화한 최종단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 진화론자들에게는 인간에게 가치를 매기거나 윤리, 혹은 존엄성을 말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자신에게 느끼는 가치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상당히 중요합니다.
사람은 왜 죽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그 마음 안에는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반면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 여겨질 때 세상에서 살아갈 힘이 납니다.
사람이 이런 존재로 진화했다고 하는 것은 참 역설적입니다.
정말 뛰어난 재능을 지녔음에도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고 여겨 우울증과 자살 시도를 한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그랬습니다.
실비아 플라스의 삶에 대해 알아볼까요? 실비아 플라스는 미국의 시인입니다.
그런데 이른 나이에 가수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비아는 미국 명문 여대를 졸업하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두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실비아는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잃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
같았으나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는 못했습니다.
또 친구와 이야기하다 어느 날 친구 둘이 낄낄대며 자기들끼리 떠나버렸습니다.
실비아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없었던 것입니다.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았지만, 남편까지 외도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천재로 명성에 자자했지만, 자신은 가치 없는 존재라 스스로 여겼기에 살 의미를 잃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측정하며 살고 그 측정한 가치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거나
잃기도 합니다.
그냥 그런 존재입니다.
이 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저절로 자기 삶의 가치를 측정하여 가치가 없다면 죽어버리는 존재로 진화했을까요?
진화의 이유가 생존인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게 필요합니다.
먼저 나의 가치를 알려면 누가 나의 가치를 평가하는가, 또 그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나 혼자서는 나의 가치를 알 수 없습니다.
타인의 평가를 믿는 것입니다.
“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은 대한항공으로부터 평균 2억 5천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으나 미국 정부를 상대로 미연방법원에 소송을 냈던 피해자 14명은
1인당 평균 230만 달러(30억 원)를 받아 냈다. 2001년, 국내 법원에서는 조종사의 무모한 조종이 인정되어 7억여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항공사의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국제조약에 의거 보상금은 1억 5천만 원 선이다.”
[출처: ‘하기 싫은 일을 해야 몸값이 오른다’ 중에서, 『세이노의 가르침』]
여기서 특별했던 것은 이것입니다.
보통 1억 5천의 보상금을 주는데, 국내 항공사에서는 유가족들에게 평균 2억 5천을, 국내 법원에서는 7억 원을, 그리고 미국 정부에서는 30억 원을 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의 가치는 그 가치보다 ‘누가 측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가장 높게 평가해주는 이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를 믿기 위해서는 실제로 나를 평가한 가치가 나에게 주어져야 믿을 수 있습니다.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나를 온 우주보다 귀한 존재라고 말했다고 해서 내가 그 말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천재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평생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 말하며 자기 주머니에 돌을 가득 담아 집 근처 강에 몸을 던져 죽는 경우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이나 책 몇 권을 사 주는 정도로는 살아갈 용기를 주는 나의 가치를 믿기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가치를 가장 잘 알았던 존재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입니다.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면 그 아이는 커서도 다른 어떤 것으로도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생명을 내어줄 만큼 자녀를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니 자녀도 그런 부모 덕분으로 살 용기를 낼 수 있기에 부모가 자기 생명처럼 소중합니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가 나의 생명을 바쳐야 할 정도로 충분한 가치를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때가 사춘기입니다.
자녀는 이때 자신의 가치를 높여줄 새로운 것들을 찾습니다.
친구도 있고 꿈도 있고 좋은 스마트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위해 내 목숨을 내어놓을 만큼
나의 가치가 존귀하다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나 자신을 맡겨야 할까요?
한 소년이 할아버지에게 인생의 가치에 관해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돌 하나를 주며 먼저 시장에 가서 팔고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값을 물어보거든 손가락 두 개만 펼쳐 보이라고 했습니다.
시장에서는 그 돌을 자기 집에 장식하겠다고 하며 아이의 손가락 두 개를 보고 2달러에 사겠다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를 다시 박물관으로 보냈습니다.
박물관에서는 2천 달러에 산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석 채굴장에 가서 팔아보라고 합니다.
책임자는 그 귀한 돌을 20만 달러에 사겠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세상에서 내 인생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내가 그를 위해 무엇까지 지불할 수 있는지를 알면 됩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나에게 가장 많은 값을 치러주는 이를 위해 내어놓을 것입니다.
그 보물을 발견하는 게 하늘 나라 행복의 핵심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팔아도 될 누군가가 필요한데,
그 보물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나의 가치를 알려주시기 위해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내어주는 가치는 얼마일까요? 온 우주보다도 큽니다.
이것을 믿는다는 말은 나도 그 가치를 주시는 분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 행복의 가치를 아는 이의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내가 목숨을 내어줄 부모가 있는 존재가 없는 아이보다 더 행복한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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