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복음: 마태 13,18-23: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이 마치 씨앗처럼 모든 이의 마음의 밭에 뿌려지지만, 그가 내는 결실은 그 마음 토양이 어떠냐에 따라 모두 다르다고 하신다. 즉, 우리는 모두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을 다 받았지만, 그 말씀이 잘 성장하고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어떻게 가꾸느냐는 각자의 바탕과 노력과 열의와 능력에 달린 것이다. 여기서 결실을 보지 못하는 나쁜 땅은 길, 돌밭, 가시덤불이 자라는 곳이 있고, 좋은 땅도 백 배를 내는 곳, 예순 배를 내는 곳, 서른 배를 내는 곳이 있다.
길에 뿌려졌다는 것은 잘 알아듣지 못했다는 의미이며,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19절)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인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뿌리가 없어서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하신다.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지고 마는 사람이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22절) 쾌락과 세상의 걱정 때문에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거룩한 빵과 참된 양식을 가시덤불 가운데서 먹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 걱정이 말씀의 숨을 막아 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씨앗이 그렇게 잘 자라기 위해서는 비옥한 땅과 물과 빛과 기후와 환경 조건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씨를 뿌리고 길바닥이나 돌밭에서 그리고 가시덤불 속에서 곡식의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농사를 짓더라도 그러한 곳에서 결실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곳에 씨를 뿌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마음의 밭은 진정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씨앗이 잘 싹트고 잘 자라서, 많고 좋은 결실을 낼 수 있도록 그 바탕과 여건을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길바닥이나 돌밭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받아들이고 곧 외면하고 마는지? 아니면 들을 때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가시덤불 속에 빠져 하느님 말씀을 숨도 못 쉬게 가두고 뒷전으로 미뤄 놓는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씀의 씨앗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것으로, 조금씩 우리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바로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 안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뿌려진 씨앗을 큰 결실을 낼 수 있도록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여기에 그리스도를 닮는 큰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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