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복음: 요한 20,1-2.11-18: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루카 복음에 “일곱 마귀가 들렸던 여자”(루카 8,2),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 그 밑에 있던 부인 중의 하나로(참조: 요한 19,25), 마르코 복음에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일 먼저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알렸던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참조: 마르 16,9-11). 전승에 의하면, 교회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로 보고, 통회와 관상의 이상적인 모델로 공경해 왔다. 성령강림 후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과 함께 에페소로 가서 선교하다가 그곳에서 선종하였다고 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복음을 통해서 진정한 부활의 증인으로 나타난다. 막달라 마리아는 새벽녘 아직 어두울 때 무덤으로 가서 돌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누군가 밤중에 주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고 생각하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전한다(1-2절).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울고 있던 마리아는 왜 예수님을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했을까? 막달레나는 완전히 자기 자신의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동산지기로밖에 보지 못하였다. 빈 무덤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기에, 자기 고집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에, 자신의 판단이 옳은 줄로만 알았기에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우리도 흔히 그와 같은 태도를 보이면서 살아가기 일쑤라 하겠다. 그럴 때 우리도 차디찬 무덤, 땅에만 쏠리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곳에서 눈을 돌려 승리를 거두시고 서 계시는 주님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하고 부르신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한 마디로 “선생님!”하고 기뻐한다.
부활의 체험이란 것은 이제 막달레나가 체험하는 것 같이, 부활하신 주님을 뵈옵는 것뿐 아니라, 그 체험을 전하는 것이다. 그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명을 받고 달려가서 그 소식을 전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신앙인으로서 부활을 매일 체험하여야 하며, 그 부활 체험을 기쁘게 선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흔히 새로이 주님 안에 태어나는 삶의 모습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며, 우리는 이때 진정으로 감사하며 살 수 있고 그것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주님을 애타게 찾았으나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여 예수께서 먼저 다가가시고 마리아를 불러주시듯이, 언제나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시고, 나를 먼저 부르신다. 그러나 우리가 나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나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내 옆에 계신 주님도 엉뚱한 동산지기로 만들 수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있는 자세로 그분을 뵙고 “나의 주님!”으로 맞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언제나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처럼 부활을 체험하고 그 체험을 용감히 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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