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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7-15 조회수 : 316

제15주간 화요일

 

 

먼저, 공지사항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늘(7/15)부터 27일까지 성지순례를 떠납니다. 장소는 튀르퀴에, 그리스 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그분의 열정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래서 새벽묵상글이 순례 일정 때문에 불규칙적으로 올라올 것입니다.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7월 28일 주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새벽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여기에 사과 4개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과 4개 있다는 것을 설명해 보십시오. 이렇게 말하면 막막하실 것입니다. 사과가 그냥 4개 있을 뿐인데 여기에 무슨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사과 1개와 사과 3개가 모여서 4개가 된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과 반쪽 2개와 사과 3개가 모이면 4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수학적으로는 맞는 것 같지만 숫자상으로는 5개의 사과가 아닐까요? 간단해 보이지만 설명하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사과도 설명하기 힘든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설명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하느님 존재에 대해 우리는 그냥 아는 것일 뿐입니다. 증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증명하려 할수록 그 모호함에 갇혀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존재를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입니다.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감으로 확인하고 지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느님을 믿겠다는 사람은 어떻게든 믿지 않겠다는 사람입니다. 많은 성인 성녀는 이 신 존재 증명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방법 없음’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분명히 공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숨을 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공기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공기가 없다고 합니까? 아닙니다. 내가 숨 쉬고 있음이 공기가 있음의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에 살아 있음 자체가 하느님이 계신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특별히 신경을 써서 많은 기적을 일으켰던 고을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적을 직접 보고 직접 체험했어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그 모든 기적을 그저 자기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으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그 모습에 불행 선언의 주인공이 되고 맙니다. 그들은 같이 있는 하느님을 느낄 수 없었고, 그 결과 하늘에 오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 안에서 주님께서는 많은 사랑으로 함께하십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또 들리지 않는다고 주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믿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과거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에 사는 사람들과 같은 “불행하여라.”라는 예수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의 삶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의 명언: 당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결심하는 그 순간이다(앤서니 라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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