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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7-12 조회수 : 481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마태오  10,16-23 
 
사람에게 실망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송봉모 신부의 상처와 치유에 대한 강의 중에 많은 사람이 ‘용서’와 ‘화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며 이런 사례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성당 단체에서 한 자매가 다른 자매님의 말에 상처를 입어 마음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정과 기도 끝에 어차피 성당을 다니기 위해서는 그 자매를 다시 보아야 하기에 고해성사를 보고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자매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도리어 그러더랍니다. 
“이제야 네 잘못을 뉘우치는군!”  
 
결국 화해하려다 더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 실화는 더 충격적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어렸을 때 성추행당했던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은 오랜 노력으로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화해를 청하여 아버지와 화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딸이 결혼하여 또 딸을 낳았는데, 자유롭게 딸 집에 드나들던 아버지는 어느 날 손녀딸에게도 또 몹쓸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문제는 위 자매들에게 뱀처럼 슬기로운 면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여지라고 하시며 “사람들을 조심하여라.”라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사람들’이란 어떤 특정한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파견된 세상에서 만나게 될 보통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며 제자들에게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왜 사람을 믿으면 안 될까요? 영화 ‘불한당’에서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사람을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상황을.” 
 
르완다 종족 대학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임마쿨레는 자신의 책에서 모든 인간이 상황이 바뀌면 다 배신하게 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자신의 절친들도 종족이 다르다고 자신이 마땅히 죽어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고 목숨 걸고 자신을 숨겨주던 목사님도 상황이 어려워지자, 그리고 자기 목숨을 위해 살아남더라도 무인도에 가서 사람 만나지 말고 살라고 했습니다.
자기와 가족의 목숨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자기들을 이렇게 만든 벨기에는 군대를 가장 먼저 빼버렸고 미국과 유럽도 모른 채 눈을 돌렸습니다.  
 
이때 믿을 분은 하느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기도에 할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한 임마꿀레에게 절대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평화를 주셨습니다.
한 사람 들어가기도 어려운 작은 화장실에서 여덟 명이 석 달 동안 숨어 살면서 그녀는 사람을 절대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뱀처럼 슬기롭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령께 의지하였습니다.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뱀처럼 슬기롭게 되지 않으면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육아법 가운데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린 자녀가 차츰 자아의식을 형성해 가면
아이들과 신나게 놀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아들을 홱 던져버리고 냉정하게 돌아섭니다.
꼬마는 평생 처음 당하는 엄청난 쇼크에서 쉽게 헤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들은 이런 경험을 통하여 인간에게는 까닭 없는 배신이 있다는 것과 인간은 이렇게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게 됩니다.  
 
어린 아들로서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절망과 배신을 딛고 다시 아빠 품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던 아빠가 다시 한번 호되게 밀쳐내 버립니다.
그리고 아빠는 아이에게 “아들아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이 아빠까지도 너를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다정하게 말해줍니다. 
 
그리고 오직 믿을 대상은 하느님밖에 없다는 것을 깊이 새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당신의 제자들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시며 비둘기와 뱀의 두 모습을 동시에 지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두 상반되는 성격을 동시에 지니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뱀이 되면 하느님께는 비둘기가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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