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종종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스마트폰을 뒤집어 찍는 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그래야 키가 커 보이고 날씬하게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뒤집어 찍으면 자연스럽게 카메라 렌즈가 아래에 위치하게 되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어디에 렌즈가 위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하긴 한 때 얼짱 각도라는 것이 있어서 셀카를 찍을 때 팔을 45도 정도 올리고 나서 15정도 몸을 틀어서 촬영하는 것이 인기였지요. 이 역시 시선의 차이를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생각해 보니 우리 세상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우리의 시선에 따라 세상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시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세상이 또 상대방이 잘못된 것으로 착각합니다.
나의 시선이 중요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시선을, 특히 사랑을 담은 시선을 가져야 했습니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얻고자 한다면 나의 시선을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의 삶이 아닌 기쁨과 희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바라는 우리의 시선은 어떤 것일까요? 이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는 장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라고 하시면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고 병자를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마음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시지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은 평화였습니다. 단순히 입으로만 평화를 비는 정도가 아닌, 사람들이 평화를 느낄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하시는 명령이 아닐까요? 이런 시선을 가지고서만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선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만을 쫓아서는 하느님 나라를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은 곳이고, 대신 사랑과 평화만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될지를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라는 말씀으로 전해주십니다. 사랑과 평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또 그런 말도 듣지 않으면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 발에 먼지를 털어 버리라고 하십니다.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평화를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우리가 그 사랑과 평화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랑과 평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대로 된 우리의 시선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 우리 혹은 타인의 삶에 어떤 기적이 나타나는지 아무도 모른다(헬렌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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