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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9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6-29 조회수 : 330

주님, 보십시오. 당신 없이는 참으로 비참한 제 인생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톨릭교회라는 건물의 주춧돌이 되신 두 사도 베드로 바오로 사도의 축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두 분은 살아생전 보여준 복음 선포를 향한 놀라운 헌신과 열정, 주님을 향한 극진한 사랑을 인정받아
이제는 하늘나라의 별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별이 되시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천국 문의 열쇠를 지닌 관리인으로,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요 탁월한 말씀 선포자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베드로 바오로 사도이지만, 한때 두분 다 스승님과의 관계 안에서 영원히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흑역사, 잠잘때마다 ‘내가 그때 왜 그랬지?’하면서 이불킥을 계속해야만 하는,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으로부터 게파, 즉 반석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신뢰받던 수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능동의 시기가 지나가고 수동의 때가 된 어느 날, 정말 잘 나가던 그분께서
한없이 나약한 한 인간 존재로 추락하는 그 날,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파악한 베드로 사도는, 여지없이 스승님을 버렸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세 번 씩이나 스승님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베드로 사도 못지않았습니다.
회심 이전 그는 예수님과 신생 그리스도교 교회를 박해하는 데 있어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결정적인 회심을 하게 된 그 날도 사실 어딘가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우글우글 모여있다는 첩보를 듣고, 싸그리 체포하려고 달려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반한 사람, 자신을 박해하는 데 가장 앞장섰던 사람을
가장 가까운 제자로 부르시고, 그 배반, 그 박해에 대해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그럴수록 더 큰 사랑을 베푸시며, 지속적인 스승 제자 사이를 맺으시며, 가장 큰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두 핵심 사도의 흑역사는 초세기 교회 안에서 정말이지 감추고 싶었던 큰 오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특별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 한 가지는 이 두 사도의 흑역사에 대해 성경과 교회 전통은 전혀 감추지 않았습니다.
보통 세상의 조직이었으면, 벌써 두 분의 흑역사를 몇 번이고 세탁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싸그리 삭제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사가들을 비롯한 성경 저자들의 서술은 냉정하기만 합니다.
두 사도의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흑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했습니다. 
 
교회의 초석이 된 두 위대한 인물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우회적으로, 혹은 완곡한 표현으로 기술할 만도 한데, 성경 저자들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습니다.
일체의 옹호나 왜곡 없이 있었던 사건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의 의도에 대해서 묵상해봅니다. 

두 분의 흑역사 통해서 우리는 나름대로 한 가지 진리를 체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 인간의 언약, 인간의 역사, 인생의 모든 각본은 한순간에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는 진리 말입니다.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던 베드로였지만, 순식간에 가장 낮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십시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만은 결코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단 몇 시간 만에 세 번씩이나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그토록 기고만장던 그가 단 몇 시간 만에 완전히 찌그러집니다.
금강석보다도 더 단단했던 그의 언약은 쥐도 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고, 철저한 배신에 따른 수치심과 죄책감, 부끄러움만이 그를 휘감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매일 필요한 자세는 ‘지속적인 겸손’ 입니다.
“주님, 이 연약한 인간을 보십시오.
천국을 살다가도 일순간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이 가련한 인간을, 시시각각으로 배신을 거듭하는 이 불충실한 인간을….” 그래서 늘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주님, 보십시오. 당신 없이는 참으로 비참한 제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게는 이제 주님 당신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당신만이 제 삶의 의미입니다.
당신만을 신뢰합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붕괴된 한 인격을 사랑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평생 따라다니게 될 죄책감과 좌절감으로부터 한 인간을 사랑으로 다시 건져내십니다.
무너질 데로 무너진 폐허, 완전히 맛이 간 반석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그 위에 다시금 새로운 교회를 건설하십니다. 
 
때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심연의 바닥으로 떨어트리십니다.
바닥에서 겪게 될 고통이 만만치 않겠지만, 그 바닥에서 우리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정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헤매고 있는 그 바닥까지 내려오십니다.
우리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우리를 건져내십니다.
재창조하십니다. 
 
그래서 때로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야말로 하느님 자비를 확실히 인식하게 되는 은총의 꼭지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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