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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6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6-16 조회수 : 303

복음: 마르 4,26-34: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역사 속에 완전히 자유롭게 이루신다. 당신 자신이 역사의 결정적 요소, “처음과 마지막”(묵시 1,17; 이사 44,6; 48,12)이심을 알게 하신다. 에제키엘서에서 말하는 향(백)나무의 햇순과 크게 자라 하늘의 새들의 보금자리가 될 향(백)나무의 비유는, 메시아 왕국은 그 “보잘것없음”에서 성장하고 인정받게 된다는 것으로 복음의 겨자씨 비유에서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32절) 되는 큰 나무가 된다는 내용과 일치한다.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27절). 이 말씀은 씨앗이 그 자체 내에 품고 있는 내적 생명력과 또 씨앗을 품어 이삭이 패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땅에서 얻는 내적 생명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씨 뿌리는 사람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농부는 씨를 뿌릴 때부터 수확 때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29절) 이렇게 지어진 농사에서 농부의 기쁨은 땀과 보살핌으로 맺어진 결실을 거두어들이려 낫을 댈 때 나타난다. 그때 그는 자기의 기다림과 희망에 대해 보상을 받게 되며,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의 자생적 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보상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31절) 그러나 일단 땅에 심어지면 씨앗이 가지고 있는 생장력과 생명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본다. 그리하여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32절) 하느님의 나라도 시작과 성장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내적 성장뿐 아니라, 지리적 확장까지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의 체험 자체였으며, 그분의 자화상이었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배척하였다. 그분의 말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성금요일에는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말라빠진 십자가 나무는 온 땅을 뒤덮는 큰 “나무”가 되어 더위와 피로에 지친 사람들에게 신선함과 새로운 원기와 희망을 주었다. 하느님 나라는 시작할 때 보잘것없이 초라하지만, 마지막에 드러나는 모습은 모든 인류의 역사를 충만한 정의와 자유로 인도할 만큼 위대한 것이다. 시작은 항상 보잘것없고, 소박하지만 그 성장은 마지막 상황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은총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겸손하게 하느님의 능력에 신뢰하는 태도를 가지라고 한다. 사도 바오로는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1코린 3,6-7) 생명과 성장의 신비는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심거나 물을 주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도 자라게 하실 수 없다. 항상 올바른 응답을 하느님 아버지께 드려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선권을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해도 개인적인 책임은 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함께 살든지 떠나 살든지 우리는 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를”(2코린 5,9) 쓰는 것임을 확신하면서 그 자신의 ‘원의’를 새롭게 표현한다.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매일 매일의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심판관이신 그리스도께서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우리에게 합당한 상급을 주실 수 있도록(2코린 5,10)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추수 때 구원의 성대한 축제가 영원한 기쁨 속에서 거행될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부터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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