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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3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6-13 조회수 : 449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한지고! 
 
 
원선오 신부님께서는 한때 한국 살레시오회의 전설이셨는데, 이제는 아프리카의 살레시안들의
존경받는 큰 스승으로 자리매김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한국에서 사목하실 때, 한국인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많은 성가들을 직접 작사작곡하셨습니다. 
 
그중에 한 곡이 ‘좋기도 좋을시고’입니다.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한지고, 형제들이 오순도순 한데 모여 사는 것. 지금도 형제들이나 가족 구성원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교의 날이나 명절에 자주 부르곤 합니다. 
 
한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그 공동체에는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분위기가 무척 썰렁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성가 선창을 담당하는 형제가 공동체 미사 마침 성가로 ‘좋기도 좋을시고’를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찹찹하고 심각한데, 공동체 분위기가 전혀 전혀 아기자기하거나 오순도순하지 않은데, 그래서 얼굴이 다들 심각한 표정인데, 입으로는 좋기도 좋을시고,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너무나 어색하고 웃겼습니다. 
 
외국 생활을 할 때 한동안 한 작은 수도 공동체 새벽 미사를 다녔습니다.
미사를 마치면 작은 방에 제 식사를 차려주셔서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제가 빵을 먹는 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식당에서는 미사를 마친 수도자들이 식사를 했는데, 뭐가 그리 꼬였는지, 매일같이 언성을 높여 다투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같은 광경이 반복되니, 여기 매일 오다가는 나까지 전염되겠다는 생각에 미사 나가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거룩한 얼굴로 미사를 봉헌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목숨 걸고 다투니, 속으로 웃기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와 일상생활 속의 형제애는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형제적 사랑과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드리는 예물은 하느님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거금의 봉헌금을 하느님 대전에 바친다 할지라도 이웃과 불목하고 다투고 있다면 그 예물 봉헌 역시 합당하지 않습니다. 
 
다투고, 수시로 불목하고, 끊임없이 서로를 헐뜯는데 혈안이 된 공동체는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데 합당한 공동체가 절대 아닙니다.
그들이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는 울리는 징처럼 공허하고 무의미한 예식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느님을 향해 바치는 예배와 봉헌이 보다 가치 있고 합당한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필요한 노력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너무나 간단한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화해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 순간 마음을 비우는 일입니다.
또 다시 서로에게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백번이고 천 번이고 언제나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밥 먹듯이 이웃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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