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마르코 3,20-35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바오로 사도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이방인의 사도’, ‘모든 민족의 사도' ‘위대한 대설교가’
‘백개의 팔을 지닌 일꾼’,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탁월한 저술가’...
생각만 해도 존경스럽고 믿음직스러운 바오로 사도이지만, 전도 여행차 로마를 떠나 아테네를 거쳐 코린토로 여행하기 전, 이렇게 솔직히 자신의 내면을 털어놓으셨습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1 코린토서 2장 3절)
뿐만 아니라 바오로 사도는 계속되는 전도여행 중의 갖은 박해와 다양한 위협으로 인해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정신적 심리적으로도 크게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 코린토 12장 7절)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바오로 사도는 변변한 수입도 없어 늘 가난했습니다.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그 누구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막 만드는 일과 복음선포를 병행했습니다.
오늘날 너무 편하게 사목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참으로 부끄럽게 만듭니다.
더구나 당시 코린토는 아카이아라는 로마 주(州)의 수도인 동시에 로마 집정관의 체류지였으며, 로마 군대의 주둔지였습니다.
또한 동서를 연결하는 국제도시였기에, 다양한 인종, 문화, 학문, 종교, 상업의 집결 장소였습니다.
자연스레 코린토는 죄와 타락의 도시, 거대한 부와 사치의 도시, 우상숭배와 부도덕의 도시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코린토 교회 안에는 바오로 사도의 직무 수행에 노골적인 반기를 들고 비방하는 적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오로 사도가 다른 열두 사도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불림 받은 순수 정통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문제 도시 코린토 교회의 방문을 앞둔 바오로 사도였기에 너무나 당연히 두렵고 떨렸을 것입니다.
차라리 이곳을 건너 뛰고 다른 도시로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오로 사도는 피해가지 않고 정면 돌파를 감행합니다.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자신은 비록 나약하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강건하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노골적으로 반기를 든 반대자들도 자신이 돌봐주어야 할 양떼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큰 마음으로 포용합니다.
코린토 2서는 바오로 사도가 혈혈단신으로 코린토 교회의 회개와 성장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투쟁하고 있는 흔적으로 가득합니다.
목숨 건 전도 여행로 인해 지칠대로 지친 바오로 사도가 젖먹던 힘까지 동원해서 코린토 공동체 건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참으로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코린토 2서만큼 바오로 사도의 인간적이고 영성적인 탁월성을 느끼게 해주는 편지는
다시 또 없습니다.
이보다 더 열정적이고 눈물겨운 편지 역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단어 하나 하나, 문장 한 줄 한 줄이 모두 명대사입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건물, 곧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 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2 코린토 4장 16~5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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