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유행했던 영화 대사가 생각납니다.
“나 이대 나온 사람이야.”
자기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책에서 ‘지식인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세상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크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식의 축적을 자기 일을 위한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에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을 책임지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안정적인 미래를 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겨우 안정적인 미래라는 세속적인 이유로 지식을 축적하고 있음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많이 배운 사람이 오히려 세상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신앙인도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고 자랑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 교회 내 직책을 자랑하는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당신을 알리기 위한 것도, 또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형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곧바로 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 자신의 체중으로 횡격막을 압박하여 질식할 때까지 고통과 충격을 느껴야 하는 잔인한 로마 시대의 사형 집행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다음 날이 안식일이었기에 사람들은 안식일 전에 모든 것을 처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의 다리를 부러뜨리는데, 그렇게 되면 체중을 지탱하던 다리에 더 이상 힘을 주지 못하여 더 빨리 질식하여 죽음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숨을 거두셨기에, 죽음을 확인하려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에 옆구리를 찔렀고 그곳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옵니다.
피와 물이 흘러나왔음은 곧 예수님께서 실제로 돌아가셨음을 보여주는 표지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죽음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봉헌하신 주님의 사랑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이 주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이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우리는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요? 세속적인 편안함과 물질적인 풍요만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철저히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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