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큰 수술을 마치고 회복 단계에 있는데, 이분의 소식을 들은 몇몇 지인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반가웠지만 그냥 빨리 집에 가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위로를 해준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지만, 자기를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오히려 그들을 응대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문안 오겠다는 분에게 오지 말라면서 나중에 다 낫고 밖에서 보자고 말했습니다. ‘이제 좀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찾아주지 않으니 이상하게 외롭고 사람들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더 힘들어졌습니다.
사실 병문안 자체, 즉 사람과의 만남만으로도 어렵고 힘들 때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만 봐도 우리는 함께 사는 공동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누군가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도 말하지만, 그 누군가 때문에 살기도 하는 우리입니다. 하지만 점점 이 사회는 외로워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고독사, 즉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죽는 사람이 한 해에 4만 명 가까이 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독사 역시 2023년 한 해 동안 3,000명 넘는다고 하더군요. 우리 역시 외로움이 만연한 사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긴 혼밥, 혼술 등의 용어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고 있지 않습니까?
함께하기 위해서는 나의 불편함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만이 누군가 함께할 수 있게 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완전히 자신을 낮추셨기에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 누구와도 함께할 수 있을 정도로 낮추셨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높이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배격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예수님을 반대하는 높은 자리에 앉으려 했기에 함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위해, 오늘 복음을 통해서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율법 학자 한 사람이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모든 계명의 정신을 요약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랑하는 사람만이 첫째가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이런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를 짓누르고 지배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으로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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