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12,28-34
그저 감지덕지하며 그분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릴 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원리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원리는 바로 사랑의 계명이요 사랑의 법규입니다.
요약하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조화와 균형입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 28-31)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시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 참된 사랑의 모습이 어떤 것일까 생각합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그 사랑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사랑, 상호 성장하는 사랑, 통합되고 완성되는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우리를 내신 창조주요 구세주이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가장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사랑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떤 대상에 앞서 하느님께 우선권을 두고, 가장 먼저 그분께 사랑을 드리고
흠숭과 찬미를 드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당신의 모상인 동료 인간에게도 향할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하느님 사랑을 기반으로 우리의 사랑은 이웃사랑의 실천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 부족해 보이는 동료 인간 안에 하느님께서 굳건히 현존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 그 외에도 하나가 추가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향한 사랑과 존중, 배려와 호의적인 시선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느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충만한데, 자신을 향한 사랑은 조금도 없습니다.
자신을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인으로 여깁니다.
아무런 쓸모없는 무가치한 존재로 업신여깁니다.
겸손의 덕과는 거리가 먼 지나친 자기 비하나 자기 학대 역시 금물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배려하거나 존중하지도 않고, 내가 나에게 아주 박한 점수를 매기는데, 이 세상 누가 나를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겠습니까? 좋은 점수를 주겠습니까?
비록 우리가 허물 투성이요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께서는 부단히 되풀이 되는 고백성사와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를 당신께서 베푸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럴 자격을 조금도 갖추지 않은 부당한 우리이지만,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주시고, 우리 안에 머무시고, 우리 안에서 호흡하십니다.
우리는 또 다른 살아있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부족한 우리가 그분과 하나 되고, 그분께서 건네시는 거룩하고 품위 있는 의복으로 갈아입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그분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은혜로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감지덕지하며 그분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릴 뿐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2 티모테오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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