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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6-02 조회수 : 629

마르코 14,12-16.22-26 
 
하느님은 왜 계약을 피로 맺으시는가? 
 
 
성체 성혈 대축일은 항상 삼위일체 대축일을 잇습니다.
성체·성혈의 신비가 삼위일체 신비를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삼위일체이십니다.
오 헨리 단편소설『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남자는 아내를 위해 시계를 팔아 빗을 사고 아내는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곗줄을 선물합니다. 빗과 시곗줄은 자신이 가진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주고받음이 사랑을 완성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혼자서는 사랑일 수 없습니다. 아드님과 둘이 계셔도 사랑일 수 없습니다.
주고받는 선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 선물이 성령이십니다.
성령도 아버지와 아드님과 같은 분이신데,
그 내어주는 것의 가치를 알지 못하면 운반할 자격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폭발물 운반을 맡기는 어른은 없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사랑의 선물 교환으로 하나가 되면 자녀가 탄생합니다.
자녀는 부모가 주는 사랑의 선물로 부모처럼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아이는 태어나도 자신이 개인지 고양이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결국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신다는 뜻은 우리도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체를 영하고 계속 ‘인간’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면 인간의 본성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계속 돈 좋아하고 사람을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세상 집착에서 자유롭고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얻기 위해 미사에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전부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라고 하십니다. 계약이라면 양쪽의 의무과 권리가 들어있습니다.
만약 내가 집을 사려고 한다면 계약서에 사인합니다.
그러면 돈을 줄 의무와 집을 받을 권리가
생깁니다.
그럼으로써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가 생깁니다.  
 
그런데 관계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여행하다 음료수 하나를 사기 위해 들른 가게주인과는 깊은 관계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매일 출근하면 월급을 주는 사장과는 더 깊은 관계가 맺어집니다.
만약 일을 하는 척하며 돈만 받아 간다면 나중에는 관계가 깨어집니다.
깨어지는 것을 넘어서 고발당하게 됩니다.
나는 피를 흘리는데 상대는 그이 비견될 수 없는 작은 것만을 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1년이 365일이라 배우자가 364일만 나에게 충실하고 하루는 바람피워도 허락하는 배우자가 있다면 그 사람과 혼인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혼인은 ‘피’, 곧 ‘생명’을 내어놓기로 한
계약이기에 단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가장 완전한 계약입니다.  
 
그렇다면 뭣 하러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계약을 맺는 걸까요?
한 청년에 의해서 암소 아홉 마리를 받은 아내는 처음엔 자신이 그 가치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은혜에 합당한 존재가 되어 남편에게 그만큼 내어놓지 못하면 부담 때문에 계속 같이 살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남편이 주는 계약의 피에 합당한 것을
내어놓기 위해 노력하다가 정말 남편이 원하는 아내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피로 우리와 계약을 맺으시려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대전 ‘성심당’은 몇 개 안 되는 직영점으로 수백억의 순수익을 올리는 대전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창업주 임길순 암브로시오는 흥남 철수 때 살려만 주시면 일생을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당일 팔리지 않은 모든 빵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며 그 계약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느님과 더 친밀해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당일 너무 많은 빵이 소진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빵을 더 만든다고 합니다.  
 
더 목숨을 건 계약이라야 더 완전한 일치가 일어납니다.
미사는 파견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내가 성체성사로 하느님이 되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계약 조항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도 이웃에게 그 믿음을 주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지 못하면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성체를 영해도 소원하기만 합니다. 
 
전혀 나의 의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성체를 영해도 구원에 이르지 못할 수 있습니다.
피의 계약이 나를 정화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분께 더 합당하기 위해 사랑에 목숨을 걸 결심하고 파견받아야 진정 미사에 참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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