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두스는 우리가 위로의 하느님보다 하느님의 위로를 찾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위로만을 찾게 되면 거짓 위로를 만나서 하느님을 잊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형제님이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 매일 같이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지금의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기를 위로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가 들어주신 것인지 그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 쉽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바치면서, 하느님만이 자기를 진정으로 위로해 주시는 분이라고 외쳤습니다.
몇 년 뒤,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힘들어졌습니다.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이 정말로 계시는 것일까? 계신다면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자기를 이렇게 외면 하실 수 있을까?’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신앙을 버렸습니다.
하느님의 위로만을 찾는 사람은 이렇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위로의 하느님을 찾으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즉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상관 없이 하느님께 위로받게 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위로만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그 자체에 다가설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을 보며 하느님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아이들은 위로받기 위해 엄마 아빠를 찾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하다가도 엄마 아빠라는 존재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위로를 주는 부모님께 대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의 위로가 아니라, 위로의 하느님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교회와 모든 믿는 이에게 성령을 보내십니다. 이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하느님이라는 진리로 우리를 이끌어 주면서 하느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알게 해줍니다. 그래서 고통과 시련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 안에서 큰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 많은 순교자가 그러했습니다. 죽음의 위협이 가득한 삶 안에서 기쁨을 간직했고, 또 힘차게 하느님을 증거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본성인 사랑을 매 순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당연히 사랑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이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느님의 위로를 찾지 말고 위로의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