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아버지 있고, 아버지 안에 내가 있다!
후줄그레한 작업복 차림으로 부지런히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던 저를 한 형제님이 불러세웠습니다.
“저기요! 여기 사무실이 어딘가요?”
“무슨 일로 그러세요?”
“양신부님 만나 뵈러 왔는데요.”
“아, 안녕하세요? 제가 양신부입니다.”
형제님은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하시더니 그러셨습니다.
“설마, 그럴리가요. 농담하지 마시고 빨리 알려주시죠.”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양신부를 두고, 양신부 어디 있냐고 묻는 분들 보며, 속으로 낄낄 웃으면서
저는 예수님의 심정을 아주 조금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강도 높은 정신 교육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자들은 스승님의 신원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틈만 나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내 안에 아버지 있고, 아버지 안에 내가 있다.
나를 보면 아버지를 본 것이다.”는 말씀의 진의를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웃기게도 필립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요한 복음 14장 8절)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들이요, 분신, 그분 자체이신 예수님을 오랫동안 뵈었으면서도, 하느님을 뵙게 해달라니, 예수님의 마음은 참으로 답답했을 것입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한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지 않으시고, 다그치지 않으시고, 다시 한번 자상하고 친절하게
당신의 신원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해주십니다.
더불어 우리 가톨릭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다시금 명확하게 선언하십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하느님 아버지가 계신다는 것, 예수님을 뵌 것은 곧 하느님 아버지를 뵌 것이라는 것.
자상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얼굴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는 백성을 위해 ‘자! 이게 내 얼굴이다.’며 명명백백하게 보여주셨는데, 바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큰 것인지, 명확히 드러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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