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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4-26 조회수 : 662

요한 14,1-6 
 
그리스도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만난 사람의 삶의 방식 
 
 
금쪽같은 내새끼 116회에서 ‘게임 캐릭터가 죽자 동생의 머리채를 잡고 무섭게 돌변한 금쪽이,
심지어 주먹질까지?!’란 내용이 방영되었습니다. 금쪽이는 게임 캐릭터가 죽자 동생들을 심하게
괴롭힙니다.
그 캐릭터의 가치가 자신에겐 너무 큰 것입니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고 때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싸움은 나의 귀한 것을 누군가 때문에 잃었다고
여길 때 일어납니다.
누가 나의 똥을 훔쳐 갔다면 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쌍하게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은 게임 캐릭터가 자기 삶의 전부입니다.  
 
왜 이렇게 집착하게 되었을까요? 어른으로 성장할 탈출구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숲에 있는데 뒤에서는 불이 나서 계속 내가 있는 곳으로 타고 있고 앞은 큰 강이 흐르는
수렁으로 막혀 있다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불안하고 두려워서 숨을 곳을 찾게 되고 그 장소를 다른 사람이 노리고 있다면 싸움을 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앞에 그 수렁 절벽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발견한다면 어떨까요?
그 자리 때문에 싸울 일은 없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곧 하느님 나라로 건너가는 다리입니다.
진리란 말은 그 다리가 하나뿐이란 뜻이고, 생명이란 말은 그 다리를 건너지 못하면 죽음뿐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용서’가 그 생활 방식이 됩니다.
이 세상 것들이 모두 죽음과 관계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에사우로부터 도망칠 때 하늘로 오르는 계단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그 계단을 만나야 합니다.
위 금쪽이들의 이야기에서 금쪽이들의 다리는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는 아이들의 다리입니다.
그런데 그 다리가 휘청거려 아이들의 평화가 깨진다면 아이들은 아이들의 세상에 갇히고 맙니다.
형제끼리 싸우고 용서하지 못합니다.
실제로 위 아이들의 부모는 매일 싸우고 이혼 직전의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저희 집이 가난하다고 아이들 앞에서 인격적인 모욕을 하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을 좋아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미워할까요? 저는 아이가 아닙니다.
제가 장난감 가지고 아이와 싸운다면 저는 아직 어른이 되는 다리를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두 주인공 중 하나는 군대를 제대해서 여자도 사귀며 결혼할 일을 생각하고 그 이전의 일은 다 잊었지만, 또 다른 하나는 평생 군인으로 살 것처럼 죄책감에 사로잡혀 결국엔 자살을 선택합니다.  
 
파올로 코엘료 ‘연금술사’에서 현자는 행복을 배우려는 사람에게 기름 두 방울을 숟가락에 주며 쏟지 말고 성을 한 바퀴 돌면 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성의 아름다운 것들에 정신이 팔려 숟가락의 기름이 쏟아지는 줄 몰랐습니다. 
 
현자는 두 번째 기회를 줍니다.
그랬더니 두 번째는 기름에 주의를 더 기울이다가 주위의 것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현자는 행복의 비법은 기름을 쏟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자는 그 사람에게 기름 두 방울을 주면서 그 사람이 이 세상 것들에 정신을 쏟을 존재가
아님을 알려준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은총과 진리라는 두 방울의
기름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 집착할 존재가 아님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미워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진정 예수님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만났습니까?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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