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0,22-30
세상 살면서 누군가가 나와 일치한다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일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치하는 것일까요? 십자가를 목에 걸고 성경을 읽으면 일치하게 될까요?
물론 그것도 일치의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께 일치하는 방법을 알 때 사람들을 나와 일치하게 하는 방법도 알게 된다는 게 핵심입니다.
세바시 1814회 ‘우울증과의 위험한 동거 7년, 기적적인 탈출 스토리’에서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시다』라는 책을 쓴 최의종 씨가 강연하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 있는 최의종 씨에게 아내가 전화했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인가 깜짝 놀라서 달려가 봤더니 몸이 아프기는 아픈데 어떻게 아픈지 정확히는
모르겠더라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우울증이었습니다.
두 아이이면서도 자살 충동을 끊임없이 느끼는 이 자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집은 지옥처럼 변했습니다.
아이들도 오랫동안 빨래를 못 한 옷을 입고
학교에 다녀야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최의종 씨도 아내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열심히 해 주었는데 뭐가 부족해서 우울증에 걸렸냐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운동하고 음식을 먹으라고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아내는 나아지지 않고 남편과의 사이는 더 벌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도 거의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아내가 죽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때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갔는데 그곳에서 쫓겨났습니다.
겉이 멀쩡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자신도 아내에게 그런 모습일 수 있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부터 최의종 씨는 우울증에 관한 책을 사서 공부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모범을 보입니다.
먼저 쉬운 운동부터 아내가 보는 앞에서 합니다. 집이 헬스장이 되어갑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위해 하는 그런 행동들에 미안해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러니 입맛도 좋아지고 7년이 지난 지금은 수영을 자신보다 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우울증을 함께 극복한 부모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일치의 핵심이 있습니다.
남편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나도 우울증 환자가 되어서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도 할 수 있다고 믿고 남편을 따라 하게 됩니다.
이것이 일치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우리가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의 일치는 그분이 아버지께 가시기 위해 하신 일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최의종 씨는 이미 우울증을 극복한 이들의 책을 공부해서 그것을 따라 했습니다.
따라 하는 것을 아내에게 보여줬습니다.
이것이 아내가 자신에게 일치하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둘이 일치할 수 없습니다.
어제는 ‘하.사.시.’를 함께 전하고 있는 카타리나란 자매가 드디어 하.사.시. 10권을 다 읽은 것을
알았습니다.
벌써 다시 2권째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톡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답글이 왔습니다.
“읽은 날은 죄를 덜 짓고…. 못 읽는 날은 죄를 더 짓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안 먹으면 배가 고프듯이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면 기도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냈습니다.
“기도의 효과를 느끼고 있으면… 기도하고 있는 것임.”
그러니 장문의 글이 왔습니다.
“이거는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제 기도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주님께서 죄많은 저를
늘 도와주고 계심을요…. 그래서 미사 중에 주책맞게 자주 웁니다….^^
내게 해를 끼친 이웃을 위해 미움을 기도로 올리니 화해로 결실을 맺게 해주시는 주님의 기적을 보면서 또 감사로 기도합니다…. 요즘은 기도의 힘이 너무 큰 것을 알기에 죄인인 제가
그 기도라는 것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고 즐겁고 기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다 전 요셉 신부님 덕분이에요!!^^”
제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저도 카타리나 자매가 저와 더 일치함을 느끼게 되어서 그렇습니다.
실제로는 그리스도와 일치한 것이지만.
저는 제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모범을 보여주었고 그 자매는 그것을 따라 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저와 일치하는 기쁨을
느낍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법을 모를 때는 누군가를 나와 일치하게 하는
법을 알 수가 없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치는 비난이나 강제로 시키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가 나와 진정으로 일치하는 기쁨을 느끼고 싶다면 내가 그리스도께 일치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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