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10,11-18
착한 목자는 양들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부활 제4주일이자 성소 주일을 맞아 살레시오회 사목자로서 부끄러운 지난 날을 돌아보며, 그나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던가 돌아봅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아무래도 우선적 사목 대상자인 아이들과 동고동락했던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에 둘러쌓여 있던 시절, 아이들이 제 목 위로 올라타 ‘이랴 이랴!’ 하던 시절, 아이들이 같이 놀아달라고 옷자락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시절, 저도 아이들을 좋아했고, 아이들도 제가 좋아 죽던 시절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순간이었습니다.
가끔 아이들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찾아오는 후배 수도자들에게 저는 늘 똑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복에 겨운 소리 제발 좀 하지 마십시오.
나이 들면 아이들에게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답니다.
아이들과 아웅다웅하는 지금 이 순간이 호시절이고 꽃자리입니다.
지금 이 순간, 아이들과 함께 지상 천국을 만끽하십시오!”
1888년 1월 31일 돈보스코는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망진단을 내리기 위해 주치의가 그의 시신을 검안하였는데, 검안을 마친 주치의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돈보스코의 시신은 마치 더이상 수선할 수 없는 낡은 코트처럼 너덜너덜했습니다.
그의 사인은 명백한 과로사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키 겨우 160센티 미터인 돈보스코의 어깨 위에 수천, 수만명 아이들이 매달렸으니, 그의 몸이 남아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소 주일을 맞아 요한복음은 착한 목자가 어떤 존재인지를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착한 목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금쪽같은 시간을 나눈다는 것이 아닐까요?
착한 목자는 너무나도 당연히 양들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 사이에 머무는 것을 지상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그는 언제나 양들 사이에 현존하기에, 몸에서는 늘 양 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람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이가 들고, 그렇게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 짓고 나면, 한 줌 재로 변할 우리 몸입니다.
뭐 그리 아깝다고 몸을 사리고 또 사립니까?
물론 건강을 잘 챙겨야,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봉사도 하고 헌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몸을 사리고 사리다 보면 좋은 시절 다 가고, 호호백발이 되고 나면, 봉사는커녕
도리어 봉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로 변합니다.
다시 한번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하느님께서 주신 이 소중한 목숨, 파리 목숨처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에 백이십퍼센트 활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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