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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1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4-21 조회수 : 370

오늘은 성소주일(聖召主日)이며 이민의 날이다. 우리의 성소와 특히 사제성소와 수도자 성소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고국을 떠나 이민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오늘 복음에는 착한 목자가 양들을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강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 목자의 모습은 이사야의 "야훼의 종"과 같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11절) 주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시기 때문에 양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며 양들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신다. 또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몸을 양식으로 주어 배부르게 하려 목숨을 내놓으셨다. 그분은 당신의 양들을 위해 생명을 내주셨다.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은 착한 목자만 할 수 있다. 그는 항상 이리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는 사심이 없는 사랑을 지닌 목자이다. 
 
여기에 삯꾼이 나온다. 삯꾼은 세상 재물을 더 사랑하는 자들로 목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주님의 양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현세의 보상을 위해 그들에게 풀을 먹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목자의 자리를 차지하곤 있으나 양들에게 이로운 일을 하려는 마음이 없는 삯꾼이다. 이런 사람들은 세속적 이익에 광분하고 영광만 탐하고 사람들에게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의 것만 추구할 뿐 예수 그리스도의 것은 추구하지 않는다.”(필리 2,21) 즉 자신의 이익을 찾느라 하느님을 찾지 않는 이들이다. 이들은 누구든지 삯꾼이다. 이들은 자기 욕구가 채워지지 않고, 쓸모가 없다고 느끼면 양들을 버린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12절) 이리는 악령이다. 이리는 어떤 사람은 만취하도록 유혹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탐욕을 불어넣고, 어떤 이는 교만으로 치켜세우고, 어떤 이는 분노로 파멸시켜 양들을 물어 가고 흩어 버린다. 삯꾼에게는 이런 이리에게 저항하고자 하는 어떤 열의도 양들에 대한 사랑도 없다. 그는 오직 눈에 보이는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양 떼가 아무리 크게 다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13절)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14절)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양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분이시다. 그분은 당신이 아버지와 가지고 계신 친밀한 관계와 같은 가까운 관계이다. 우리는 이 아드님과의 관계를 통해 아버지 하느님과 연결된다. 그 관계를 통하여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아시고 아들이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이 하느님을 알게 된다. 그분은 당신이 양들을 아시기 때문에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15절) 하신다. 목자는 양들을 버리지 않으셨고, 이리들에게 양들을 넘기지 않으셨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양들을 지키셨다. 그분은 양들을 이끌고 생명을 주는 풀밭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16절) 이것은 다른 민족들도 함께 신앙을 고백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들은 우리 바깥에 있지 않고 한 우리에서 한 목자 아래에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착한 목자께서 원하시는 하느님의 일이다. 그러므로 목자들은 ‘목자’ 안에 있으면서 한 목자의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그래서 한 ‘목자’를 따르게 해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17절)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 세상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다.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신 아드님을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고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신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18절)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이 자발적인 것이고, 그분은 당신이 내놓으시고 되찾을 수 있다고 하신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이 당신의 죄의 결과가 아니라, 당신의 의지임을 보여주신다. 이것은 또한 그분이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18절) 하신다. “이것이 내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18절). 이 명령은 바로 세상을 위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명령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17절) 하셨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이루시는 분으로 아버지의 뜻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명령’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께 대한 사랑에서 온 것이다. 
 
베드로는 구원이 이제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양 떼에 베풀어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이며,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라고 한다. 부활하신 주님은 "생명을 주는 영"(1코린 15,45)이 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완전한 구원의 모습이 현시점에서부터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장차 우리에게 일어날 일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3,2). 이것이 바로 결정적인 부활이 될 것이다. 
 
오늘은 성소주일이다. 우리의 성소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이제 진정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시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주님을 묵상하고, 그 목자 아래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도록 하여야 하겠다. 이것이 하느님께 부름을 받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삶이다. 우리의 성소를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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