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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4-20 조회수 : 504

내가 육적인 인간인지, 영적인 인간인지 알아보는 법
 
 
오늘 복음은 성체성사에 관한 긴 말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성체에 관한 지금까지 하신 말씀을 이해하면 그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고,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가면 육적인 사람입니다. 
 
물론 가리옷 유다처럼 남아있다고 해서 다 영적인 것도 아니고, 지금 믿지 못한다고 해서 완전히 육적인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의 말씀은 영적이며 생명에 관한 것인데, 육적인 사람은 이 말씀을 육적으로만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라며 투덜거리고 다 떠나가지만, 베드로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주님 곁에 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수준 때문에 말씀이 곧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당시에 그곳에 있었다면 제자들처럼 예수님 곁에 남았을지, 아니면 떠나갔을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영적 인간인지, 육적 인간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전에 한 여자와 남자의 나체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나체 그림이고 매우 야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충격을 받은 것은 그 그림을 어린이들은 돌고래들로 본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메슬로우는 망치를 손에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시각과 이해력은 나의 욕구에 의해 좌우됩니다.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을 먼저 찾습니다. 
따라서 길을 지나가는 여자를 볼 때, 남자들은 나체의 모습을 상상하고 여자는 여자의 모자와 옷, 핸드백이
얼마짜리인지를 스캔합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께서 아무리 영적인 말씀을 하셔도 육체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대표적인 인물로 가리옷 유다를 뽑았습니다.
그는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도둑이라고 말하고 오늘 복음에서는 더 심하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열둘을 뽑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하나는 악마다.”
 
사람이 악마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심을 믿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육체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체적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나’의 정체성을 바꿔야 합니다.
나를 육체로 본다면 그 사람은 육체적 행복만을 추구할 것이고, 나를 영혼으로 본다면 그 사람은 영적인 기쁨을 추구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우리 앞에 소개하실 때, “나는 나다!”라고 하십니다.
우리 안의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의 행복만을 추구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육적인 인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외줄타기를 하는 한 서커스 단원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다 강철 줄을 걸어 놓고
거기서 줄타기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손에 땀을 쥐면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열심히 이리 건너오고 저리 건너가고 하면서 시종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은 사람들 앞으로 와서 말했습니다.
“누가 내 어깨 위에 올라타겠습니까? 내가 한 사람을 어깨에 메고 건너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볼 뿐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꼬마 소년이 “저요!”하고 손을 들면서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 소년을 어깨에 태우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겁나지 않든?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지?”
그 소년이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분이 제 아버지거든요!”
 
어떤 사람의 말을 믿으려거든 나와 그 사람과의 관계가 먼저 정립되어야 합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을 믿을 수 없고, 그러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더욱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먼저 믿지 말을 먼저 믿지 않습니다. 관계가 먼저이고 말이 그 다음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분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오늘 남은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믿을만한 분임은 믿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요? 그분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 자신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육체적인 행복은 추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육적 욕망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되고 더욱 영적인 인간이 되면 그렇게 될 때 말씀을 더 믿게 되고 더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 믿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육적인 인간이기 때문임을 명심합시다.
육적인 인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육체, 즉 자아가 아니라 내가 주인이라 여기는 것에 의해
규정됨을 명심합시다.
 
우리 안에는 성체로 들어오시는 “너는 나다!”라는 분이 계심을 명심합시다.
이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끕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을 수 있으면 이미 영적인 인간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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