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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4-17 조회수 : 573

요한 6,35-40 
 
결국 성체 안에 끝까지 남는 자: 두려움 속으로 한 발을 내어 디딜 용기가 있는 자 
 
 
오늘 복음도 성체성사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오늘 내용은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지 않으시면 누구도 아드님께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빵의 기적을 체험한 이들은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께서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할 때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정상적으로 보지 않고 떠나갑니다.
그들은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신 이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라고 하시며,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결국 예수님을 떠나간 이들은 어째서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신 이들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어떻게 됩니까? 그분이 나의 왕이 되십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은 자녀들은 어떻게 될까요? 부모의 종이 됩니다.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찾아온 이들은 아직은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행복하지, 자신의 주인이요 왕으로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모시겠다고 결심한 이들은 나를 포기하는 표를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에덴동산에 있었던 선악과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한 것과 같습니다. 
 
자기를 봉헌할 마음이 없는 이들은 아버지께서 그리스도께 이끌어주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결국 아드님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챙기려 할 것인데, 아드님을 그렇게 이용당하게 두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나로 살기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로 살기를 원하는 이들만이 성령의 이끄심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도움의 은총이라 합니다. 
 
몽고에서 선교하던 이용규 선교사에게 인도네시아에서 교육사업을 하라는 하느님의 뜻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일가족이 인도네시아에 정착하여 대학을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대학을 시작하려고 할 때 아주 많은 장벽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슬람국가여서 그랬을 것입니다. 
‘이제 여기선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 
 
이때 비자에 어려움이 생겨 갑작스럽게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언제 돌아오게 될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좌절감이 몰려왔습니다.
아이들은 울면서 “아빠, 그러면 우리 몇 달 동안 학교 못 가는 거예요?” 라고 물었고, 선교사는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 땅의 젊은 영혼들의 교육을 맡기겠다면서요.
그런데 저는 정작 제 아들과 딸의 교육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하느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니? 너는 왜 네 일이 아닌 걸 걱정하니?”
생각해보니 그건 자신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깨달음이 왔습니다. 
 
“제가 하느님의 일에 대해서 필요 이상의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이라고 하면서 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하느님께 다시 맡겨드립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비워진 선교사의 손에 새로운 그림을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 문제에 대한 아픔을 주셨고, 그래서 대학을 세우기 전에 초중고등학교를 세우게 됐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그리스도교 학교로 정부 인가를 내주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기적적으로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고 첫 사례로 그리스도교 학교로 올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출처: ‘너는 왜 네 일이 아닌 걸 걱정하니?’, 이용규 선교사, 유튜브 채널, ‘CGNTV SOON’] 
 
이용규 선교사는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내려놓음』이란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내려놓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려놓음’은 어떤 ‘완성형’이 아니고 ‘지속적인 과정’입니다.
그리고 내려놓음의 핵심은 결국 하느님과의 관계 가운데 나의 주도권을 이양하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가운데 상대방이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어떠한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맡겨드리는 것.
그리고 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공급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걸어가는 삶. 이것이 바로 내려놓음의 삶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결국 예수님을 떠나게 될 이들은 이 내려놓음이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빵을 주셨다는 말은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걱정은 필요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걱정을 채워줄 대상으로 그리스도를 찾고 있었습니다.
내려놓으면 걱정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나로 살아가는 것, 나의 주도권을 내려놓지 않는 삶이 아직 더 낫다고 여기는 이들이었습니다. 
 
영화 ‘마인’(Mine)은 사막 임무에서 실패한 두 병사가 사막을 건너다 지뢰를 밟게 되며 벌이지는 일을 그렸습니다. 둘이 다 지뢰를 밟았고 주인공은 발을 떼지 않았지만 다른 군인은 발이 절단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무려 70시간을 추위와 더위, 동물의 공격과 모래 폭풍을 이겨내며 견딥니다.
더는 희망이 없다고 느낀 그때 한 발짝을 옮깁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뢰가 아닌ㅈ하나의 깡통이었습니다. 
 
동료의 고통을 보며 발을 뗄 수 없어 고생한 그 70시간은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버리지 못했던 그 자아 때문에 당하는 고통과 같습니다.
그에게 끊임없이 한 발을 내디디라고 말했던 원주민은 자아 때문에 당하는 고통을 알기에
그렇게 말했던 것인데 두려움이 그 발을 떼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자아를 밟고 움직일 용기가 없는 사람을 이끌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신념을 가진 이는 도와주십니다. 
 
나를 내려놓을 수 없으면 다른 나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나는 나다.”이십니다.
나로 살아가는 것에 지쳐 누군가에게 나의 주도권을 맡기고 싶다면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내 일로 걱정하고 싶지 않아 모든 일을 주님 것으로 맡겨드리고 싶다면, 동방박사를 이끌었던
별을 아버지께서 당신에게도 다시 보여주실 것입니다.
자아를 떠나는 한 걸음의 용기만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참 자유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주십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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