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범죄학자 조지 켈링과 정치학자 제임스 윌슨이 명명한 ‘깨진 유리창 이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유리창이 깨진 차를 방치하면 이곳의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로 읽혀서 강력범죄로 확산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을 사회학적으로만 볼 수 있지만, 어쩌면 우리 각자의 마음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깨진 유리창처럼 형편없어지면 어떨까요? 점점 더 자기 마음의 상태가 무너지고 맙니다. 자기 비하가 계속 심해지면서 자존감 하락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마음의 수리는 얼른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또한 다른 이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배가 갑작스럽게 아프면 어머니께서 “엄마 손은 약손”이라면서 배를 문질러 주셨습니다. 배를 쓰담는 그 손이 제 배의 아픔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이렇게 나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손이 필요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쓰다듬어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나의 ‘님’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을 보면서 그분 안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깨진 마음이 아닌 아주 건강한 마음이 되어 이 세상에 힘차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제자들은 다락방에 문을 걷어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들립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고, 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제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기뻐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숨어 있는 자기들 모습이 떳떳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불안한 마음, 완전히 깨어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기 위해 나타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마디도 “평화가 너희와 함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놀람에 자기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까지 보여주시면서 유령이 아닌 육체의 부활임을 드러내신 것이지요.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십니다.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부활임을 그들 앞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아픔을, 또 깨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아프고 깨진 마음을 고치기 힘들지만, 전지전능하시고 사랑 가득하신 주님께서는 충분히 정상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분이기에 우리는 주님 말씀처럼 세상에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남의 생활과 비교하지 말고 너 자신의 생활을 즐겨라(콩도르세).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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