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내’의 한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인내(忍耐), 우선 ‘인(忍)’은 참을 인을 씁니다. 칼 도(刀) 자에 점 하나가 붙어 있는 칼날 인(刃)이 심장을 뜻하는 심(心) 위에 붙어 있습니다. 심장을 칼로 도려낸다는 의미입니다. 즉, 심장을 찍히는 고통을 당하더라도 참아낸다는 말입니다.
이제 인내(忍耐)의 ‘내(耐)’입니다. 이는 견딜 내(耐) 자로, 길게 늘어진 턱수염을 뜻하는 이(而)와 동작을 나타내는 촌(寸)이 합쳐진 글자로, 수염을 뜯기는 벌을 받더라도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언젠가 성당 꼬마 아이가 내 얼굴을 보더니 갑자기 손을 댑니다. 그리고 한가락만 길게 나와 있는 턱수염 하나를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프던지 눈물이 다 났습니다. 수염이 뜯기는 고통이 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심장을 찍히는 고통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이를 견뎌 내는 것이 ‘인내’라고 말합니다. 인내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견디어 낸 만큼 달콤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장 루소의 말이 생각납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은 분명히 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라는 열매는 매우 답니다. 그래서 거부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문제는 그 단 열매를 그냥 얻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쓴 십자가를 짊어져야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구원의 열쇠는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는 단 열매만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외면하고서는 절대로 예수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너무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만납니다.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 활동하는 것도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하십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조금만 소홀하면 욕만 많이 먹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해 보십시오. 피땀을 흘리시며 또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시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의 십자가도 짊어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아주 단 열매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인색한 부자의 곳간처럼 내 안에 쌓여서 갇히는 사람들, 이 곶간의 자물쇠를 깨고 여는 일, 그곳에서부터 내 사랑은 시작된다(김진영).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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