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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0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4-10 조회수 : 416

복음: 요한 3,16-21 
 
하느님의 품에 쉽게 안기려면 
 
 
형제들과 함께 몇 군데 밭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문제는 열심히 씨는 뿌리는데 여간해서 싹이 안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삽, 쇠스랑, 곡괭이 등을 동원해서 극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열심히 이랑을 만들고 있는데,
지나가시던 ‘전문 농사꾼’들마다 걸음을 멈추고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저희들을 바라보십니다. 
 
인삼밭 주인 아저씨께서는 트랙터로 하면 금방일 텐데, 왜 그렇게 ‘쌩고생들’ 하냐고 야단을 치십니다. 
 
아예 저희 밭 옆에 쭈그리고 앉으신 할아버지 한분께서는 도대체 어디서 온 젊은이들이냐며
집요하게 물어보십니다. 
 
뭐라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기도 뭣하고, 이야기해봐야 이해하지도 못하실 것 같아서
뭐라고 설명해드려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사실 저는 교도관이고요, 이 양반들은 외근 나온 재소자들입니다.
이 양반들 고생들 좀 해야 되서 일부러 기계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갑자기 표정이 바뀌신 분들께서 그제야 아무 소리 않으시고 당신들 밭으로 가시더군요.
그러면서 당신들끼리 하시는 말씀. 
 
“얼굴들은 그렇게 안 생겼는데...” 
 
참으로 순박하신 분들이더군요.
제 말을 정말 믿어버리시더군요. 
 
저희들 행색이며, 말투며, 돌아가는 분위기를 봤을 때, 즉시 답이 나올 텐데, 워낙 착하게 사시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제가 워낙 타고난 ‘뻥쟁이’라서 그런지 제 말을 그대로 믿으시더군요. 
 
정말 죄송했습니다.
내일 밭에 갈 때는 막걸리라도 몇 병 사들고 가서 사과를 드려야겠습니다. 
 
오늘 소개되고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 이하의 내용은 유명한 구절입니다.
짧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교리를 아주 일목요연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교리, 엄청 복잡해보이지만 사실 위 진술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나 간단합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멸망하지 않는 방법, 구원을 얻기 위한 길,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비결은 절대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그를(하느님께서 보내신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믿으면 됩니다.
더 이상 다른 것이 없습니다. 
 
복잡한 것 좋아하고, 거창한 것, 그럴 듯한 것 좋아하던 유다인들에게 있어 ‘너무 쉽다는 것’이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기다려왔던 메시아, 구세주 예수님께서 바로 자기들 눈앞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도 간절히 염원했던 구원이 바로 코앞인데,
그리도 애타게 기다려왔던 영원한 생명의 문이 바로 눈앞인데, 그리고 구원되기는 너무도 쉬웠는데, 너무 쉽다는 것 때문에 결국 믿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시대 또 다른 형태의 불신이 판을 치는 시대입니다.
세상이 하도 흉흉하다보니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호의를 베풀어도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접근합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워낙 자비로우신 분이기에 구원에 이르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우리는 구원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영생의 대열에 이미 참여했습니다.
다만 우리의 구원은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것입니다. 
 
이 은혜로운 사실을 사심 없이 믿어야하는데, 이걸 죽어도 믿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결과 신앙생활이 늘 지지부진합니다.
하느님의 크신 은혜도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극진한 자비에 대한 인식도 그저 그렇습니다.
비만 증세가 있는 70Kg짜리 아이를 품에 안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품에 쉽게 안기려면 작아져야 합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방주에 오르려면 역시 가벼워져야 합니다. 
 
겸손해져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제공하시는 영생의 샘물을 마시려면 순수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단순함이 요청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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