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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4-05 조회수 : 520

요한 21,1-14 
 
자녀를 낳는 게 양식인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난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통해 우리는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음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살과 피를 내어주신 분은 영광을 받아야 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양식이 되어주시기 위해 돌아가셨다가 부활해야 함도 인정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아도 눈이 가려 알아볼 수 없습니다. 
 
누구나 예상하는 것만 보이는데, 눈에 보이는 부모의 얼굴에서 영광을 보지 못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영광을 믿는 것은 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과 연결해서 오늘은 생명을 경시하고 자녀를 낳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은 사람들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만날 때도 자녀를 낳을 때입니다.
그제야 부모가 자신을 낳을 때의 바로 그 부모를 알아보게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보다 부모의 영광을 보는 더 완전한 방법은 나도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모는 영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어져 그리스도의 부활도 믿어집니다.  
 
유튜브에 “‘동물과 감정 나눠요’… 심리 치유 효과 ‘주목’”이란 짧은 동영상이 있습니다.
학교 아이들에게 동물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갖게 했더니, 생명 존중감 8%, 인성 8.2%, 자아존중감 13.2% 상승했다는 결론입니다.  
 
사람이 반려동물의 눈을 바라보면 출산과 수유 시 분비되는 어머니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동물을 사랑하며 어머니가 되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어머니가 보이게 됩니다.  
 
어머니가 보이면 어떻게 될까요? ‘자존감’이 상승합니다.
‘아, 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구나!’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아 존귀한 존재라는 느낌, 이것이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다른 생명도 존중할 줄 알게 되고 인성도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엄마를 지독히 미워하는 여자 주인공이 엄마보다 더 심한
사형수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중에는 그 사형수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와 화해하려 합니다.
혼자는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도 죽어가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어머니가 됩니다.
그때 어머니의 참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김희아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얼굴에 모반이 크게 있다고 어머니는 김희아 씨를 버렸습니다.
김희아 씨는 딸을 낳고 어머니를 보았다고 합니다.
딸의 모습에서 자기를 그렇게 바라보며 가슴 아파했을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되어야 부모 마음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활한 예수님을 알아보는 가장 
 
완전한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인간을 하느님 자녀로 만들기 위해 수난 하실 수밖에 없으셨고 부활의 영광에 드실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자녀를 잘 낳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건 이런 마음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부활 체험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창조를 사랑하지 않는 인간에게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보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여주셔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생명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에게 보여주셔야 어차피 알아보지도 못하기에 당신을 감추십니다.  
 
온라인 미디어 굿 타임스는 중국에서 사고를 당해 뒷다리를 잃은 한 어미 개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는 기차역 근처 거리를 떠돌다가 그만 사고로 뒷다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주민들은 강아지가 기찻길을 돌아다니다가 기차에 치여 뒷다리가 잘려 나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강아지는 뒷다리가 없어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 기적과 같은 삶을
보여줬습니다.
살아난 강아지는 새끼들을 건강하게 출산해 어미 개가 되었고,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은 두 다리로 씩씩하게 살아갔습니다.  
 
새끼들이 젖을 떼자 열심히 구걸해서 새끼들을 먹이며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미 개와 강아지들에게 또 한 번의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역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어미 개와 새끼들을 모두 입양하기로 한 것입니다.  
 
강아지들의 울타리가 되어준 직원은 “어미 개는 엄청난 모성애를 보여줬다.
음식을 주면 절대 자신이 먼저 먹지 않고 새끼들을 먼저 먹이고 나서 남은 것만 먹었다.”라며
“사람보다 낫다.”라고 전했습니다. 
 
왜 역무원은 그 유기견과 새끼들을 키우려 했을까요? 당연히 어미의 사랑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이해하는 주인을 잘 따를 것도 알았습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비를 가진 이에게 자비를 보이십니다.  
 
이처럼 자녀를 낳을 줄 아는 사람은 생명에 대해 소중함과 창조의 이유를 볼 수 있기에 창조자 하느님을 알아볼 줄 알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처럼 하느님 자녀를 낳는 일을 하는 베드로를 부르셔서 함께 하느님 자녀를 상징하는 물고기를 드십니다.  
 
자녀를 먹는다는 말이 웃기지만, 물고기 ‘153’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의 자녀들’이란 뜻이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선교하시고는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를 낳는 일이 양식인 사람은 주님을 만납니다.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빛을 봅니다.
생명에 대한 자비를 가진 이들만 모든 생명의 창조자를 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첫 명령을 이렇게 내리신 것입니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창세 1,28)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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