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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3-29 조회수 : 601

이사야 52,13―53,12    히브리 4,14-16; 5,7-9   요한 18,1―19,42 
 
그리스도께서 증언하신 진리란 십자가를 지지 않는 하느님 자녀는 없다는 것이다 
 
 
오늘 요한복음의 수난기에서 예수님께서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오?”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더는 진리가 무엇인지 찾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으로 진리를 증언하십니다. 
 
우리나라 정식 첫 세례자는 1784년 북경 사신으로 갔다가 그라몽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던 이승훈 베드로였습니다.
그전까지는 1777년부터 시작된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를 이끌던 이벽, 권철신 등을 중심으로
자신들이 주교와 사제직을 맡아가며 미사와 성사를 집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승훈이 보고 배우고 온 것은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에 의해 서품을 받은 사제만이
성사를 집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785년 지금의 명동성당에 자리 잡고 있었던 김범우의 집 명례방에 모여 서학을 연구하고 천주교의 신앙을 전파했던 한국 초대교회 창설자들은 몇몇 유생의 고발로 사형에 처하게 되고 어떤 분들은 유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북경 주교의 명령대로 윤지충과 권상현이 대놓고 제사를 거부하여 1791년
그들의 순교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승훈이 세례를 받고 돌아온 지 10년이 지난 1794년이 돼서야 겨우 중국인 신부 주문모 신부가 조선 사람으로 변장하여 처음으로 조선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주문모 신부가 집을 옮겨 다니며 성사를 집행하는데 주문모 신부의 거처가 발각되면
그를 모시던 회장들이 사제복장을 하고 관아에 끌려가 대신 순교를 함으로써 신부가 피신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렇게 3명의 회장이 순교하였고 마지막으로는
강완숙 골롬바가 6년 동안이나 목숨을 걸고 주 신부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강완숙 골롬바까지 잡혀가 문초를 당하게 되자 주문모 신부는 마음이 약해집니다.
자신만 없어지면 자신 때문에 그렇게 많이 잡혀가 죽지 않게 될 것이고 오히려 신자들이 생명을 부지하여 천주교가 유지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목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가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려고 합니다. 
 
그날 밤, 주 신부는 이런 묵상을 하게 됩니다.
‘양 떼는 목자를 위해 목숨을 바쳐 죽어갔는데, 목자가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강을 건널 수 있는가?’ 
 
그리고 돌아와 의금부에 자진 출두하여, ‘내가 주문모 신부요!’하고 자수하여 순교의 월계관을 씁니다.
그때가 1801년 4월 19일이니 주문모 신부는 약 6년간 조선교회를 위해 일하셨고 한국교회의 첫 사제순교자가 됩니다. 
 
그 후 33년 동안 사제가 없는 암흑의 신앙생활을 하고 모진 박해가 있었음에도 신자 수는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조: 김길수 강의, 하늘로 가는 나그네] 
 
주문모 신부님은 사제가 되기 전 결혼도 하셨던 분입니다.
세상의 행복도 알고 허무도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압록강만 건너면 중국에서 편하게(?) 사목 생활을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마 그 압록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사제’라는 정체성, 신원의식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사제다.’라는 정체성을 목숨으로 지켜내신 것입니다. 
 
요한의 수난기에서는 두 인물이 대비됩니다.
바로 하느님의 자녀임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임을 포기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베드로입니다. 
 
물론 베드로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있는 유다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은 이 두 인물을 대비하며 하느님 자녀로서의 신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이유는 바로 하느님 자녀는 십자가 죽임을 당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빌라도에게 말씀해 주시려던 진리입니다.
유다인 입으로 이 진리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소.
이 율법에 따르면 그자는 죽어 마땅하오.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오.” 
 
하느님의 자녀로 자처하려면 죽어야만 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이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자녀는 아버지의 뜻이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데, 피 흘림 없는 사랑은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위대한 성인으로 불리는 가가와 도요히코(訶川要産)는 사생아로 태어나 아사 직전에 두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구출되어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1909년 성탄절 전야에 그는 신가와 빈민굴 한 평짜리 오두막으로 이사하여 빈대와 벼룩이 우글거리는 그곳에서 고독하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돈이 모자랄 때는 굴뚝 청소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자기 밥으로 죽을 쑤어 함께 먹었습니다.
불량배들에게 맞아 앞니 4개가 부러지는 핍박을 이기고 주일학교를 세웠으며 그가 휴지를 주워 쓴 소설 ‘사선을 넘어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자
그 인세를 모두 빈민들에게 나눠줬습니다. 
 
1927년 일본 노조를 최초로 설립하였고 1929년에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일제 군부에 항거, 투옥되었다가 종전 후 실명 상태에서 다시 빈민굴로 돌아와 사랑의 봉사를 계속했습니다.
그의 신조는 이것이라 합니다. 
 
“당신 자신을 주시오.”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은 피 흘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삶이 자신의 정체성과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것처럼, 그분의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도 자신을 이웃에게 내어줍니다.
그러면 우리 살과 피가 이웃을 정화하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게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증언하신 진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에페 1, 7) 
 
  
 
사랑을 위해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사람. 그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이고,
그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함께 누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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