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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7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3-27 조회수 : 495

우리는 나이 들면서 늙을 운명이고, 병들 운명이며, 죽을 운명입니다. 이런 운명에서 벗어날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습니다. 만약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없다면 우리의 삶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운명으로부터 피하길 바라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이론적으로 절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인생 자체가 고통이고, 존재 자체가 고통이기에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고통을 그대로 적시하고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고통은 이 세상 창조 때부터 이렇게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창세 3,17)

 

따라서 고통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견디는 것입니다. 견디면서 그 안의 하느님을 발견하고 함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고통 속에서 함께 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도 고통을 피하지 않으시기에 우리도 피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십자가는 고통입니다. 화려한 장신구가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이 고통을 안고서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자기가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 누구도 자기 고통을 대신 짊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날마다’입니다. 날마다 안고 지나가야 하는 고통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참 힘들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안락한 삶이라는 보증수표를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에서 어떤 끔찍한 일도, 나쁜 일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수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환난과 고통 중에서도 구원받는 존재이지, 환난과 고통에서 구원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제자들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스승을 팔아넘길 것이라는 말을 듣고 몹시 당황스러워합니다.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묻습니다. 솔직히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의아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주님을 팔아넘길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특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고를 들으면서 불안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실제로 팔아넘길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유다도 예수님께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묻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안락과 풍요로움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날마다 주님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배신하지 않고 함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일체유심조 / 一切唯心造)(화엄경).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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