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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3-27 조회수 : 626

마태오 26,14-25 
 
인생이 무대라 여기면 평화의 길이 보인다  
 
 
무대공포증이란 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공포를 느끼지 않으려면 무대에 서지 않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무대에 섰다면 무대공포증을 느끼는 것은 무대를 준비하고 그 위에 나를 세운 누군가를 배신하는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정해주는 역할을 거부한 가리옷 유다는 어떤 심판을 받았을까요?
예수님은 그를 두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무대는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 작가가 준 역할과 대사를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하면 트라우마가 생기고 무대에 오를 때마다 공포에 휩싸여야 합니다.
무대에서는 그곳에 올려준 이의 의도대로 잘할 자신이 없다면 언제나 공포 속에서 올라야 합니다.  
 
가수 보아 씨는 이른 나이에 일본에서 데뷔하게 됩니다.
십 대 중반의 나이에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쇼케이스 무대에서 음 이탈을 몇 번 일으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판의 목소리는 어린 보아를 주눅들게 하였습니다.
그녀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1년씩 늙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만약 무대에 오를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노래 부르며 음 이탈을 겪는 것은 두려울 게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대가 아니라면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양심상 죄를 지으면 하늘이 두려워지고 이웃에게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아무리 인생이 무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불안과 두려움, 긴장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그냥 인생이 누군가에 의해 올려진 무대라고 여기면 어떨까요?
영화 ‘버드맨’은 20년 전 버드맨이라는 영웅물로 유명했던 한 남자배우가 이전의 영광을 다시
찾고자 하는 노력을 그렸습니다.
전 재산을 털어 연극을 만들었고 다행히 흥행합니다.
그런데 정작 영웅이 되는 것은 연극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젊은 배우입니다.
자신도 그 연극에서 인정을 다시 받고 싶지만, 아무도 한물간 배우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의 귓속에서는 이전의 영광이었던 버드맨이 분명 이전의 영광을 다시 얻을 수 있다고 종용합니다.
그는 결국 진짜 권총으로 자기 얼굴을 쏩니다. 연극의 완성을 위해서.  
 
연극은 자기 영광이 아닌 보는 관객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영화 블랙스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주인공은 자신 때문에 발레를 포기한 엄마의 뜻을 이뤄주기 위해 살인까지 불사합니다. 
 
우리 안에도 우리만의 무대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기 영광을 추구하라는 유혹이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타인이 만든 무대에 서든지, 자기가 만든 무대에 서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유다는 자기 무대를 자기가 만들고 버드맨처럼 자기 영광을 추구하려 하였습니다.
결과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해 공포에 휩싸여 자살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인생이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무대라고 여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감독이 원하는 배역과 역할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공포로 살아갈 이유가 없어집니다. 
 
배우 정유미 씨는 무대공포증과는 사뭇 다른 무언가를 겪고 있습니다.
연기를 할 때는 정말 신들린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 서면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심지어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합니다. 
 
대학생 때 연극 대사를 잊어버린 트라우마 때문에 그런다고 하지만, 사실 대인공포증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연기할 때는 그런 두려움이 거의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사실 나에게 배역이 주어지고 대사가 주어진다면 더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대로 충실히 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사람들 앞에서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원한다면, 그리고 혹시 심판이란 게 있어 태어나지 않는 게 좋았다는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그냥 이 무대가 창조되었고 그 창조자가 그리스도라는 분을 보내서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살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면 그대로 한 번 살아봅시다. 
 
나쁠 게 없습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살면 그만입니다.
내가 이미 죽었으니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사니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삽니다.
그러면 감독과 관객 모두에게서 영광을 받게 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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