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요한12,7)
'예수님의 장례!'
오늘 복음(요한12,1-11)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이 말씀'은 네 복음에서 모두 전해집니다. '루카 복음'은 여인의 이 행위를 '용서 받은 죄인의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고, '마태오와 마르코와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장례'와 연결합니다.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 엿새 전(파스카 전 주 토요일 저녁)'에 베타니아로 가셨을 때, 마리아는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약320그램)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립니다.
열두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요한12,5)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복음은 전합니다.
'삼백 데나리온'의 가치는, 노동자들의 하루 일당을 100,000원으로 기준하면, '3천만원'이나 되는 큰 돈입니다.
만약 이와 비슷한 일들이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면, 우리도 유다 이스카리옷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성당 안에서 행해지는 우리의 모든 활동(희생과 봉사와 봉헌 등등)의 본질은, 그것이 '하느님을 위한 행위', '하느님께 드리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너의 충실한 활동을 나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오늘 독서(이사42,1-7)는 '주님의종'의 첫째 노래입니다. 주님의종이신 예수님의 부르심과 소명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장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 창세기 35,15)
(이병우 루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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