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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3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3-23 조회수 : 371

복음: 요한 11,45-56 : 그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죽은 라자로를 예수께서 다시 살리시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그 소문이 퍼져나가자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의회를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요.”(47-48절).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정말 성전과 백성을 걱정해서 이런 회의를 소집했을까?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로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염려는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군중들이 만일에 민중봉기라도 하게 되면 로마의 진압을 받게 되고, 성전은 파괴되며, 유다민족은 완전히 지배를 당하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도 생각을 하였겠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사람들이 보았고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예수님을 견제하기 위해, 그 사태를 수습하려고 의회를 소집한 것이다. 자기들의 위치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백성들의 지도자로 살아왔는데, 자기들이 군림하며 행사한 영향력을 상실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에 대사제 가야파가 “여러분은 아무 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49-50절)하고 말하였다. 이것은 대사제로서 예언을 한 것이며, 예수님의 죽음이 유다인뿐 아니라, 흩어져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죽는다는 예언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그분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의 행위로써의 의미를 갖는다. 이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태어나게 될 것이다. 
 
하여간에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이해 때문에 예수님을 죽음에로 몰아가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행위가 하느님의 뜻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도 성찰해 보지도 않았다. 오직 자신의 안전과 자신의 지위를 보존하는 것에만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장애가 된다고 보고 있는 예수라는 존재를 없애야 한다는 결정이 나도록 당시의 상황을 몰고 갔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판단 기준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진위를 가리고 있는가? 아니면 나 자신의 명예나 안위에 우선을 두고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이기적인 판단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늘을 살고 있는 다른 무죄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하고 있지나 않은가를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 복음의 유다 지도자들을 보면서 나를 반성하며, 잘못된 판단으로 그들의 잘못을 범하지 않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자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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