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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3-22 조회수 : 592

요한 10,31-42 
 
'하느님의 일'은 정확히 어떤 일을 말하는가?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대등하게 여기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우리도 그리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당신이 아버지처럼 하느님이 되시고 우리도 하느님임을 믿게 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이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 일을 믿으면 당신이 아버지한테서 왔음을 믿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엄마가 엄마로 믿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일을 해서가 아니라 이미 우리는 본성상
인간이 되었음을 믿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통제를 심하게 하면서 무언가를 해야만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게 한다면 아이들은 엄마를 엄마로 인정할 수 없어집니다.
엄마는 아기가 탄생했을 때부터 온전한 인간이 되었다고 믿게 해야 합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 182회에 “‘엄마라고? 내 엄마 아니야’ 망상에 빠진 금쪽이는 가족의 존재까지
의심 중”이란 사연이 나왔습니다.
5학년 때까지 인기도 많고 6학년 반장 전까지 흠잡을 게 없던 모범생 아이가 갑자기 환청과 망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차를 탈 수도 없고 가족을 봐도 도망 다니고 기억력도 3~4주 없었습니다.
틱 증상도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가족에게 욕하며 살인자라고까지 말합니다.
병원에 가면서 핸들을 꺾고 탈출하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아이는 울다가 웃다가 이상한 소리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엘리베이터에 타서 계속 열었다 닫기를 하면서 밤낮없이 꼬박 6일을 자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에 나가서 막 걷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왜 아무도 없을까?”라고 묻기도 합니다.
아이가 정말 엄마 말대로 귀신에 씌운 걸까요? 둘의 대화를 들어봅시다.  
 
“내 엄마를 왜 죽였냐고!”
“기연아 약 먹어”
이 말에서 엄마는 아들이 인간 이하의 수준, 곧 약을 먹어야 정상이 되는 존재로 여기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기연이는 의심의 눈초리로 이렇게 묻습니다. 
 
“... 엄마라고?”
“어?”
“그럼 과거에 뭐 했었는지 말해봐.”
“그럼 기연이 과거에 뭐 했었는지 말해봐.”
“‘뛰어, 뛰어, 뛰어, 뛰어, 뛰어’ 했던 거 기억나? 나 어렸을 때!”
“어, 엄마가 동영상 찍어줬잖아.”
“그때 같이 누구랑 있었지?”
엄마는 바로 대답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단호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아니야. 내 엄마 아니야!” 
 
기연이는 당연히 아빠도 의심합니다.
형도 의심합니다.
밥을 먹다가 말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밥 먹기 힘들다.
진짜 맛없어. 예전에 그 맛이 아니잖아. 다 이상해.
다 이상하다고. 나도 이상하게 보이지 엄마?” 
 
엄마가 대답을 망설이자 “왜 대답이 늦어? 아빠, 내가 이상하게 보여?”라고 묻습니다.
“아빤 네가 좀 이상하게 보여.”
“그래? 나도 아빠 이상하게 보이고 형도 이상하게 보이고 엄마도 이상하게 보여.” 
 
사실 아이는 엄마에게 복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엄마에게 날이 서 있습니다.
자기에게 섭섭하게 했던 것을 그대로 합니다.
엄마가 자기를 온전한 인간으로 취급해주지 않았으니 자신도 엄마에게 그렇게 대하겠다는 것입니다.  
 
엄마는 아이의 문제가 아이 탓이라고 여깁니다. 이미 온전한 인간이 되었다고 믿어주지 않습니다.
저는 다행히 어머니께서 “엄마는 일곱 살까지만 키워주는 거야. 이제부터는 다쳐도 네가 잘못해서
다친 거고, 잘해도 네가 잘해서 잘 된 거야!”라고 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일곱 살에 이미 온전한 성인으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좀 섭섭하면서도 자존감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머니는 아이를 지독히도 통제하려 들며 뭐 말만 하면 “엄마는 네가 심리적으로 많이 아파 보여!”라고 합니다.  
 
엄마는 어렸을 때 말도 못 하고 감정 표현도 못 하고 자기가 미운 아이였습니다.
늘 외로운 아이였습니다.
아이는 무서웠습니다.
사랑받지 못했었습니다.
엄마가 먼저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미 인간이 되어 저절로 클 수 있는 존재라고 믿게 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가 그랬습니다.
아기들이 비록 네 발로 걷더라도 엄마들은 언젠가 당연히 두 발로 걸을 것이라고 믿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 말을 못하고 옹알이만 해도 언젠가는 저절로 말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믿어줘야 아이들이 불안하지 않습니다. 불안하면 세.육.마.에 빠져 나뿐인 아이, 곧 나쁜 아이가 됩니다. 
 
이렇게 해 주는 것이 곧 어머니의 일이고 그것이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엄마, 나 믿어줘서 고마워. 평생 믿어줘!” 
 
누군가를 창조자로 믿게 하려면 그 누군가를 에덴동산에 살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그렇게 하셨고 가톨릭교회를 그렇게 하라고 파견하셨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체만 영하면 이미 주님의 자녀이기에 우리는 선악과를 바치고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만 하면 되는 존재라고 알려줘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통해 사람들은 우리가 창조자로부터 파견된 존재임을 저절로 믿게 될 것입니다.
불안이 아니라 평화를 주는 존재만이 아버지에게서 파견된 어머니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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