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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8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3-18 조회수 : 443

“대학생 아들이 있는데 게임만 하면서 인생을 낭비합니다. 성인이니까 그냥 놔둬야 할까요? 아니면 게임을 못하게 일일이 따라다니며 잔소리해야 할까요?”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듭니다. 요즘에 취업하기 힘들다고 하니 그냥 꾹 참고 다녀야 할까요? 아니면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해야 할까요?”

 

이런 식의 흑백 논리를 말하면서 답을 이야기해 달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이것 아니면, 저것’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다양한 길이 있음에도 선택의 폭을 스스로 좁힐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실 이렇게 단순화하면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잠깐이나마 편안한 심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다시 더 복잡한 마음이 되고 맙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세상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답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답이 많은 세상에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근시안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준이 정확해야 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긴다고 주장했습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 하나의 기준을 정확하게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율법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이 사랑 안에서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벗어나는 다양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을 이야기하면서 돌을 던져 죽이라고 했다면서, 예수님의 생각은 어떤지 묻습니다. 살려주라고 하면 율법을 어긴다고 트집을 잡을 것이고, 죽이라고 하면 이제까지 가르쳤던 사랑은 어디에 있냐면서 또 다른 트집을 잡았을 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 같은 상황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떠나갑니다.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억지를 스스로 깨달았을 것입니다. 간음했다고 하는데, 혼자 그 자리에 온다는 것 자체가 큰 억지이요. 여자 혼자서 간음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그들은 사랑 없는 닫힌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을 먼저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야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으며, 이 안에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사랑하는 법과 용서하는 법을 배우며 삶을 완성해 간다(케리 이건).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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